편성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리뷰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20년 간 뼈 빠지게 일하고 은퇴한 카피라이터의 삶을 담은 에세이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다는 말로 어그로를 끈(!) 책 제목은 알고보니 열심히 일할만큼 일하고 퇴직한 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가 없다. 그래서 둘이 아껴살면 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이 부부가 놀고 있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에 더 가깝다. 일명 '혜자성준'으로 불리는 이 부부는 실제로 영화보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살고 있다. 그냥 소모적으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게 아니다. 아무나 붙잡고 술을 마셔도 다 자신의 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보니 저절로 인맥 형성이 되고 일감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2,30대 젊은 부부가 놀고 있는 게 아니다. 50대 은퇴 부부가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고 혹해서 퇴사하지 말도록 주의하자. 책 문체가 워낙 젊고 트렌디(!)하다보니 어느 청년이 퇴사해서 놀고 있구나 오해할 수 있다. 잊지 말자. 편성준 작가는 20년간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한 사람이다. 20년간 동일업종에 종사한다는 건 어떤 직종이든 정말 엄청난 일이다.(이 짓을 20년동안 반복해야 된다니!) 그리고 카피라이터는 트렌디하면서 동시에 핵심을 간파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는 인생을 통찰하는 짧은 문장이 많다.
입원한 친구는
병원으로 찾아가고
그냥 아픈 친구는
술집으로 찻집으로 불러내서
따뜻하게 위로하라.
우린 모두 서로에게
문병할 의무가 있다.
이 세상엔 결혼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 더 결혼을 많이 하나 싶을 정도로 비혼주의자가 결혼한 사례가 은근 많다. 편성준 작가도 비혼주의였는데 어쩌다보니 운명처럼 마주친 여자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두 부부는 자유롭게 살면서 마음 내키는대로 인생을 함께 운영한다.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는 그런 두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부부는 그냥 누워서 놀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회사에 얽매여 죽도록 야근하는 삶에서 벗어났을 뿐, 나름대로 열심히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살고 있다. 사실 20년이나 일했으면 최소 3억은 모으지 않았을까? 3억으로 리얼티인컴을 풀매수하면 매월 150만원씩 따박따박 들어오니 검소하게 산다면 충분히 두 사람의 생활비 정도는 된다.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서 비록 재테크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고양이 '순자'도 키우기 때문이다. 고양이(개)는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요즘은 반려동물에게도 돈을 쏟아부으며 소중히 키우는 시대다. 웬만큼 돈이 없으면 고양이를 모실 집사 자격이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 부부의 생활비 걱정은 넣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편성준 작가는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서 언젠가 정말 심각하게 돈이 없어 친구들에게 빌렸다는 에피소드를 썼다. 그런데 난 친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흔쾌히 돈을 몇백씩 빌려주는 친구가 여럿 있는 편성준 작가가 부자처럼 느껴졌다. 그런 친구가 있기 때문에 돈 걱정을 안하게 된 게 아닐까. 정말 그런 친구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친구다.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다. 부부가 둘 다 놀면 생활은 어쩌지 하는 걱정에 꿈도 못꾸고 있는 세상의 많은 걱정쟁이 부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광고 카피인데 편성준 작가가 쓴 건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여행사 광고였던 것 같은데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주제가 바로 열심히 일한 당신이니까 이제는 걱정말고 떠나도 좋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10년 일하고 은퇴하면 파이어족, 20년 이상 일하고 은퇴하면 정상적인 은퇴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10~20년 정도 일했으면 쉬어야 하는 생물이다. 안 그럼 고장난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거나, 아니면 하기 싫어도 건강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할 수 있는 일이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100년 인생에 10년에서 20년만 열심히 돈 모으면서 일하고 나머지는 놀 수 있다면 꽤 가성비 있는 삶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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