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작가의 에세이 <닥터 바이올린>을 참 흥미롭게 읽었다. 김민섭 작가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음대에 편입했고,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된다. 그렇게 김민섭 씨는 의사로 생계를 해결하고 바이올린으로 취미생활을 이어간다. 게다가 결혼해서 가정도 꾸린 사람이다.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다. 너무 부럽다. 인생을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그저 견디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큰 위로가 될지 질투심을 유발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담담한 문장들은 나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김민섭 작가는 이미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음대에 다시 도전한다. 사실 이미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고 있는데 새로 학위를 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미 어느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 다시 초보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도 김민섭 작가는 다 견뎌내고 음대를 끝까지 다녀서 졸업하고야 만다.
나는 반주자에게 사인을 주며
우리는 내 생애 첫 관현악과 학생으로의
바이올린 독주 무대를 시작했다.
김민섭 작가는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음대를 나오는 게 아니라, 바이올린 실력을 향상시켜서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게 참 좋아보인다. 이미 의사로서 소속된 여러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고 가정도 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내는 게 존경스럽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소속감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다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그룹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강력하게 사회구성원으로서 뿌리를 뻗어나간다. 그렇게 여러 집단에 뿌리내리다보면 그중 어느 한 집단에서 뿌리뽑히게 되더라도 타격감이 훨씬 적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한 직장에만 종사하던 사람은, 직장에서 은퇴하는 순간 인생이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은 사회활동을 계속해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들과 안정된 가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매일 확인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김민섭 작가의 이런 새로운 도전을 마냥 특이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욕구의 실현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다양한 집단에 소속될수록 더 강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소속되는 집단을 늘려나가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그룹을 찾기보다는, 이미 다니는 직장에서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나가는 게 더 쉽고 지속하기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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