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시에 멋진 건물도, 바닷물도,
곤돌라도, 햇살도,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왜 아빠의 눈을 반짝이게 하지 않는 건가요?
왜 아빠는 저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세요?
최아름 작가의 < 어떻게 아빠랑 단둘이 여행을 가?>를 다 읽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다보면 다 적응하게 돼 있다. 작가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며칠만에 아빠와의 여행에 적응한다. 사실 부모님 모시고 가는 여행은 무조건 패키지로 가야 한다. 만약 자유여행으로 갈거라면 부모님이 군말없이 자식들의 여행계획에 다 따라주셔야 하고 체력도 매우 건강한 상태여야 원만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근데 대부분의 부모님은 단 며칠이라도 김치없는 식사를 견디기 어려워하신다. 그러니 다른 요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김치를 한국에서 싸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작가도 이 책에서 김치를 싸가지고 갔다가 냉장고에서 폭발했다고 적어놓았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라 냄새도 심하고 캐리어 안에서 폭발할 위험(!)도 있다. 사실 터진 김치 치우느라 고생한 작가 가족보다, 그 숙소 주인이 더 불쌍했다. 그 외국인은 김치가 무슨 음식인지도 모를텐데 자기 숙소 냉장고에서 희한한 냄새가 강하게 배어 빠지지도 않는다면 얼마나 열받겠는가. 하지만 작가를 탓하기도 애매하다. 애초에 혼자 가려던 여행에 가족들이 아빠를 끼워넣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된 거니까. 혼자 다니는 여행과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여행은 다르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느냐에 따라 어느 식당을 갈지 선택지가 달라지는데, 여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작가는 아빠와 서로 배려해가면서 어떻게든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책까지 내고야 만다. 대단하다.
< 어떻게 아빠랑 단둘이 여행을 가?>는 그냥 요즘 내 관심사가 '아빠'여서 무심코 고른 책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빠가 나를 낳으신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 아빠가 왜 그러셨는지 문득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 오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작가도 아빠와 여행을 다니며 눈물날 뻔한 순간을 겪었다고 한다. 그때의 작가는 어렸으니, 지금의 작가는 더더욱 아빠를 많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체력이 안좋고 반대로 아빠는 체력이 좋아서, 최아름 작가가 아빠와의 여행에서 겪었던 고통을 나는 전혀 겪지 않았다. 아빠는 여행을 좀더 하시겠다며 나가고 나는 숙소에서 기절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도 느끼한 음식을 잘 못먹어서 만약 내가 아빠와 유럽여행을 간다면 작가가 겪었던 갈등 상황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아빠와 일본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사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혼자 다니거나 친구와 가는 여행보다 훨씬 힘들다.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체력 문제와 음식 메뉴 선정이 아니더라도 부모님과의 여행은 쉽지 않다. 근데 한번 자유여행의 맛을 진하게 느껴버린 사람은, 다시는 패키지 여행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원래 자유의 맛이란 그런거다. 한번 자유를 맛보면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쩌다 패키지 여행을 짧게 하더라도 뼛속깊이 후회를 한다. 이건 여행이 아니야, 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자유여행이 한국에서 먹는 칼칼한 김치라면, 패키지여행은 외국에서 먹는 시큼달달한 김치나 마찬가지다. 그 맛이 아니야! 누가 시키는대로 사는 인생과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하는 삶, 둘중에 선택하라면 당연히 조금 힘들더라도 후자다. 그래서 자유여행을 해본 사람은 패키지 여행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최아름 작가가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아빠와의 여행을 자유여행으로 기획한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빠와의 여행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아빠랑 아빠친구랑 둘이 패키지 여행을 떠나는거다. 원래 나이와 성별이 다르면 여행에서 서로 원하는 바가 심각하게 갈린다. < 어떻게 아빠랑 단둘이 여행을 가?>에서 나오는 작가의 아빠도 한국음식과 낚시하는 할아버지, 지나가는 국산자동차에만 눈을 번뜩였을 뿐 아름다운 유럽 경관에는 시큰둥하셨다고 한다. 반대로 작가는 반짝이는 온갖 기념품들과 로맨틱한 유럽의 분위기에 흠뻑 취했지만, 아빠가 관심을 갖는 한국음식과 낚시, 국산자동차에는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여행은 동성친구랑 가는 게 사실 제일 꿀잼이고 편하다. 근데 동성친구랑 가도 원하는 게 다르면 크게 싸울 수 있다. 그럴 땐 하루만 따로 다니자고 하면 되긴 하다. 꼭 여행 같이 갔다고 모든 순간에 함께여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면 된다.
근데 < 어떻게 아빠랑 단둘이 여행을 가?> 읽어보니까 나도 한번 책을 써볼까 싶기도 하다. 나도 의외로 여행 경력이 다양한데. 부모님과도 가고 동생이랑도 가고 혼자서도 가고 번개로 모르는 사람과도 다녀보고 남편과도 가고 친구랑도 가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다녔다. 어릴 땐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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