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브 빈치 <그 겨울의 일주일> 리뷰
책 <그 겨울의 일주일> 리뷰
‘그 겨울의 일주일’이라는 제목은 박완서 작가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같은 느낌을 연상시킨다. 사실 난 책을 읽을 때 제목을 굳이 계속 떠올리면서 읽지는 않아서, 리뷰를 쓸 때 다시 제목을 찾아봤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책으로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처음 아일랜드 바닷가 절벽에 스톤하우스 호텔을 세울 때부터 호텔에 사람들을 맞아들이기까지 모든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호텔을 세운 주인공 '치키 스타'의 유년시절부터 호텔을 세우기로 결심하게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다 설명하는데 그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흥미진진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모든 이야기가 얽혀 하나가 될 때 모든 떡밥이 풀리면서 이 책의 재미가 절정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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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의 서사를 한 챕터씩 소요해가면서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 정말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구나 하면서 읽다가 '넬 교장'이 등장하고 나서는 아, 이 세상에 이런 쓸모없는 인간도 있구나 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넬 하우 교장의 마음이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면서 조용히 심플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근데 그렇게 살면 소중한 친구를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넬 하우 교장은 그걸 몰랐던 것 같다. 삶에서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인연조차 끊어버린 넬 하우는 스스로를 아무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는 독거노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나마 소속감과 행복을 주던 오랜 직장에서조차 은퇴했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런 모습에 안타까워 한다.
사람은 자기만의 다양한 행복의 원천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고독을 즐기는 인간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는 존재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넬 하우는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없고, 심지어 은퇴선물로 일주일 간 아일랜드 여행을 보내줬는데도 못마땅하고 귀찮게만 생각한다. 물론 나도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살면서 낯선 이와 대화하는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다보면 그런 상황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아무리 소심한 사람이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친절한 말 걸기 능력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속마음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다. 무관심과 관심 그 사이, 적절한 관심은 더 깊은 관계를 위한 발판이 된다.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방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초능력도 사용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한편 예지몽을 꾸는 소녀 프리다의 이야기는 영화 <겨울왕국>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스스로 두려워하여 점점 상황을 악화시키다가, 현명한 지인의 따뜻한 조언에 깨달음을 얻고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겨울왕국의 '엘사'는 자신의 얼음마법을 두려워하다가 왕국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결국 통제할 수 있게 돼서 사람들이 봄에도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 책에 나오는 초능력 소녀 '프리다'도 불길한 징조를 미리 알게 되어 현실화되는 걸 두려워했지만, 결국엔 좋은 징조에 집중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그런데 프리다에게 현명한 조언을 해준 호텔 주인이자 이 책의 주인공 '치키'의 손을 우연히 잡게 된 프리다는, 치키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지만 치키를 위해서 함구한다.
막장드라마는 없었다
사람들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면 안타까워하면서 응원해주지만, 남자와 동거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하면 그다지 응원하는 눈길은 주지 않는다는 걸 작가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여부만 빼고 보면, 고향 사람들 입장에서 두 경우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고향마을에 살던 소녀가 도시로 가서 어떤 남자와 함께 살다가 다시 혼자가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렇게 착한 거짓말을 멋지게 이용해서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든다. 독자 입장에선 혹시나 그 남자가 훗날 마을에 찾아와 모든 비밀이 알려지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가 될까봐 조마조마하며 읽었지만 다행히 평화롭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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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들의 교감과 상호작용이 이 책의 진짜 묘미다. 한편으로는 주인공 '치키'의 성장 일대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성장소설을 좋아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먼 땅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진솔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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