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모예스 <스틸 미> 리뷰
책 <스틸 미>는 영화로도 제작됐던 <미 비포 유>의 후속작이라서 더 재밌었다. 주인공은 런던 여자로,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하면서 연애도 하는데 그 모습이 책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연상시킨다. 공통점은 둘 다 솔직 털털한 런던 출신 커리어우먼이자, 드라마 여주 특유의 엉뚱 발랄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다른 점은 브리짓은 런던에서 일하지만 루이자는 뉴욕에서 일한다는 것과, 브리짓은 지적인 매력을 가진 재벌과 이어지지만 루이자는 지적인 재벌을 차버리고 환자 이송을 위해 매력적인 근육을 가진 구급대원과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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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막장 드라마
독자 입장에서 상류층의 인생을 간접경험해보는 건 항상 재밌다. 역시나 이번 편에서도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돈도 많고 나이도 많은 사업가를 사로잡은, 돈도 없고 나이도 어리고 애까지 있는 여자의 이야기는 더더욱 흥미롭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초반에는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중반에는 로맨스의 절정을 달리고, 후반에는 슬픈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로 전락한다. 한 사람과 평생 사랑하든 아니든, 의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연애와 결혼은 정말 다르다. 연애할 때는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깔끔하게 관계를 차단할 수 있지만, 결혼했다가 자녀가 생긴 상태에서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지난 관계를 깨끗하게 청산할 수 없다는 걸 작가는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새로운 부인은 전처의 자식, 남편과 전처의 공통 지인들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하고 전형적인 못된 불륜녀 이미지로 낙인찍혀 버린다. 이는 새 부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다 결국 신혼의 로맨스까지 앗아가 버린다.. 소설 속에서는 이 문제를 남편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새로운 부인이 아무 문제없이 잘 어우러지길 바랄 뿐,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아무리 많은 사랑과 애정을 퍼부어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연애할 때는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닌 것이다.
불륜은 꼬리를 물고
설상가상으로, 새 부인은 외국에 숨겨둔 자신의 친자식을 위해 남편의 재산을 몰래 쓰다가 걸려서 거짓말을 한다. 이것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쓴 주인공은 유일한 밥줄이었던 비서 자리에서 댕강 잘린다. 뿐만 아니라 전 부인의 자식인 '태비사'와의 관계도 엉망이다. 자기 기분만 생각하는, 자신과 나이가 같은 새어머니가 싫었을 거고 새어머니도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전 부인 자식이 싫었을 것이다. 이십 대는 한창 이기적일 나이다. 고생을 많이 해서 일찍 철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적 철이 없고 자기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만으로 결혼해서는 안 된다. 결혼은 많은 것들을 얽히게 만든다. 내 직장, 동료, 친구, 가족,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이 모든 것들이 배우자의 그것과 복잡하고 정교한 실타래처럼 엮여버린다. 연애할 때처럼 칼로 두부 자르듯이 똑 잘라 두 사람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철없는 새 부인은 젊은 예술가에게 푹 빠져서 바람을 피운다. 솔직히 난 그래도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면 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소설 속에서 전 부인이 연설하는 장면을 보고 깨달았다. 바람난 배우자를 용서하고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구나. 전 부인은 남편이 세운 고급 상류층 카페를 수십 년간 운영하다가 은퇴하는 매니저를 위한 연설을 하는데, 새로운 부인의 연설은 완벽하게 준비하고 연습했음에도 신입사원의 건배사처럼 허술했고, 전 부인의 연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끼어들었는데도 진부하기는커녕 모두가 유쾌하게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아주 찰지게 즉석연설을 해서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그런 방식으로 부부가 함께한 세월은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해버린다. 이 소설의 핵심은 이게 아니지만 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 루이자는, 페이스북을 뒤지며 전 남친의 애인을 염탐하다 결국 재결합에 성공하지만 난 그런 지질한 연애는 질색이라서 별 관심이 안 갔다. 작가가 억지로 전 남친과 엮어준 것 같다. 전 남친이 나름 2편에서 주인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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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사실 <애프터 유>가 2편이고 <스틸 미>는 3편인데, 난 2편을 안보고 3편부터 읽어버렸지만 다행히 별 문제는 없었다.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루이자의 삶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새 직장에 적응하고, 파티에 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남자 친구와 싸우고, 거짓말에 휘말려서 직장에서 잘리고, 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직장을 얻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간다. 독자 입장에서는 역동적인 인생이 재밌을 수밖에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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