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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김초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by 티라 202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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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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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한국인이 쓴 소설이지만 일본 소설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미국 소설 특유의 스토리 전개력이 느껴진다. 작가가 이공계 전공이라 그런지 우리가 한 번쯤 상상했던 판타지 세상의 너머까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게 한다. 항상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바뀌는 것만은 아니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

 

유토피아를 버리고 지구를 택한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술 발전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 흉터가 유전자 조작기술 덕분에 사라지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흉터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작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증표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지구로 오기 전까지는 흉터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낙원에서 살았다.

흉터를 없애는 기술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흉터 따위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할까. 주인공은 결국 흉터를 안고 지구에 남는 선택을 한다.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지구를 택한다. 차별 없는 그 유토피아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순 없었던 걸까. 인간은 고통과 차별이 있어야 사랑도 꽃피우는 존재인 걸까.. 멸시 속에서 나를 멸시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사랑이 조금씩 나눠져 있어서 굳이 한 사람을 특정해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해놓지 않아서일까?

유토피아 하니까 어떤 이야기가 생각난다. 완벽한 인생을 살다가 죽는 꿈을 무한대로 꿀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위대한 왕, 용감한 기사 등 완벽한 삶을 계속해서 꿈꾸지만, 결국 지루해져서 일부러 시련을 하나씩 추가해서 꿈을 꾸고, 그것도 지루해져서 점점 더 쉽지 않게 사는 인생을 꿈꾸다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을 꿈꾸게 된다는 내용이다. 진짜 유토피아가 있다면, 오히려 그곳은 슬픔과 절망이 없는 대신, 아무 감정도 없는 평온함만이 남은 텅 빈 감정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떠날 수 있다면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단편은 행성 이주가 가능한 세상 이야기다. 다른 행성으로 이동 가능한 우주선이 개발되어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이주했는데, 블랙홀을 통한 공간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예전 이동 방법은 폐기되는 바람에 가족을 보러 갈 수 없게 된 어느 과학자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 과학자는 인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꿈을 꾸며 인체 냉동기술에 온 생을 다 바쳤고, 그 기술개발 때문에 가족 먼저 보낸 건데, 블랙홀 공간이동기술이 탄생하면서 그것도 소용없게 됐다. 그래서 자살하는 심정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보겠다는 명분으로 낡은 우주선을 타고 가망 없는 우주여행을 떠난다.

보통사람 같으면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삼팔선으로 갑자기 나뉘어버린 남북한처럼, 언제 어떻게 생이별하게 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는 짓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바친 연구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먼 행성에 살고 소식도 끊긴 가족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인체를 손상시키는 냉동기술로 수 차례나 스스로를 냉동시키며 수명을 연장해온 주인공은, 운행을 멈춘 우주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떠나보낸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버려진 고물 우주선을 타고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

 

마무리하며

이 소설은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편은 서로 다른 이야기고 이어지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유사하다.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미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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