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리뷰
책 <지구 끝의 온실> 리뷰
책 <지구 끝의 온실>의 작가는 과학 전공자답게 탄탄한 기초지식으로 미래도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와중에도, 인물 간의 관계 변화에 따른 잔잔하고 미묘한 감정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참 독특한 느낌이 든다. 읽을 때마다 김초엽 작가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한국 작가의 다양성에 적지 않게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에 따른 다양한 재미의 책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식물학자가 쓴 것처럼 정교하고 자세하게 식물과 연구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입부가 좋다. 지루한 서사는 잘라내고, 기이한 식물이 뉴스에 등장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근데 바로 이 식물이 이 소설의 결말이나 다름없는 주인공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맨 앞에서 결론이 나온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요즘은 결론부터 말하는 게 트렌드다. 특히 성질 급한 한국인 성미에 딱 맞는 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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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이점
첫째, 식물이 주인공이다. 물론 화자는 사람이지만 ‘모스바나’라는 이름의 가상식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책이다. 게다가 멸망한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 역할도 식물이 해낸다. 처음에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악당 같이 묘사하다가 나중에는 반전으로 지구를 구한 히어로가 된다는 점이 재밌다.
둘째, 신체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된 인간이 주요 인물이다. 살점이 거의 붙어있지 않은 기계라는 점에서, 우리의 의식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뇌도 없는 기계덩어리, 얼굴 근육이 차가운 기계로 대체되어 표정도 지을 수 없고 눈물도 흘릴 수 없는 인간,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열정적으로 연구를 한다. 과연 그 안에 영혼이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셋째, 주요 등장인물이 다 여자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성은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개 판타지 소설에서는 활동적이고 호기심 넘치는 남성이 주인공 역할을 하고, 여성은 그 옆에서 주인공이 역경에 부딪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이 되는 동료 정도의 보조적인 역할만 하곤 하는데, 그런 무의식적인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반전을 주고 싶은 작가의 심리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넷째, 말레이시아 쌍둥이 자매가 주요인물이다.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약초학자였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왜냐면 우리가 상상하는 마녀는 큰 솥에 마법의 약초를 넣고 끓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라는 말도 있듯이, 마법사라는 단어의 이미지와 다르게 마녀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좋지 않아 안타깝다. 마법처럼 약초를 이용해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줬는데 마녀 이미지라니 너무 아쉽다. 사실은 훌륭한 약초학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쓴 소설이지만 한국인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인도 주인공만큼 톡톡한 역할을 하는 점이 재미있다. 영미권이나 유럽권이 아닌 동남아계 외국인이 한국인의 소설에서 주인공이다. 게다가 악당도 아니고 매우 훌륭하고 멋진 역할이다. 이 역시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지.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너무 몰입이 잘 돼서 순식간에 다 읽어서 이런 생각을 하며 읽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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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드라마 확정!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환경과 외계인, 그리고 사랑에 관심이 많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은은한 로맨스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신간이 발표되었으면 한다. 또 소설가 지망생이 있다면, 이미 훌륭한 작가가 많다고 해서 희망을 저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선택의 자유와, 선택지의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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