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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드로 미샤니 < 세 여자> 리뷰

by 티라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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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 미샤니 <세 여자> 리뷰

세_여자

 

책 <세 여자> 리뷰

이스라엘 소설은 처음이지만 역시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이국적인 요소가 다소 등장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해리포터처럼 완전히 새로운 마법 세계는 아니다. 내용상으로는, 처음에는 '오르나'라는 여자가 주인공인가 싶다가 중간에 가면 '길'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이구나 싶다가 나중엔 주인공이 정해진 게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참 재밌다. 1부, 2부, 3부 각 부의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로맨스 소설 읽듯이 편안하게 쭉 따라가다가 갑자기 추리소설이 된다.

***

 

1부: 이혼한 싱글맘 '오르나'의 이야기

1부는 '오르나' 시점으로 서술된다. 1부만 읽으면 오르나의 전남편 로넨과 아들 에란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오르나가 서운한 건 신경도 안 쓰고 자기들끼리 로넨의 새 부인,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놀러 다닌다. 오르나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남편이 다른 여자랑 눈 맞아서 새 살림 차리고 떠난 건데, 갑자기 찾아와서 남아있는 아들까지 데려가서 자기 식구들의 일원이 되게 만든다. 성인군자 오 르나는 이 모든 걸 아들 에란을 위해 참아낸다. 에란이 아빠를 좋아하고 새 식구들도 좋아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럴 땐 오르나의 엄마조차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편도 아들도 자기를 떠나버린 것 같은 공허함에 오르나는 길을 만난다. 가수 '길'이 자꾸 떠올라서 소설 속 '길'이 잘생긴 금발 남자라는 게 몰입이 안되긴 했지만 아무튼 이스라엘 남자 길은 훈남이라고 한다.

1부에서 오르나를 슬프고 외롭게 만드는 로넨과 에란은, 3부에서는 그래도 가족이라고 오르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된다. 죽고 나서 그러면 뭐해? 라는 생각이 든다. 죽기 전에 잘할 것이지. 오르나가 슬퍼하고 서운하고 마음이 찢어질 때는 모른 척 지들끼리 룰루랄라 놀러 다니더니 죽고 나서야 도움이 되면 뭐해? 그래서 난 오르나가 제일 불쌍하다. 로넨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도 이겨내고 가정을 지켰어야 했다. 그게 책임감이다. 에란은 그 당시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그렇게 아빠 쪽으로 마음이 기울면 안 됐다. 가정을 파탄 낸 건 아빤데, 악감정이 전혀 없는 것도 이상하다. 가정 파탄으로 인해 오르나와 에란은 정기적으로 치료사에게 심리상담을 받는데, 여기서 치료사는 엄마가 아들에게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세뇌시키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르나가 성인군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은 타들어갔다. 결국 길 같은 이상한 놈팡이를 만나 인생 종 치고 만다.

내 생각엔 오르나가 로넨을 나쁜 놈이라고 에란에게 세뇌를 시켰어야 했다. 비록 아빠에 대한 악감정만 남겠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가정을 버리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인간을 오냐오냐 받아주다가 화병 나서 오르나 인생만 억울하게 종 쳤다. 결혼이라는 건 그런 거다. 죽을 때까지 책임지는 거다. 살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더라도, 참아내고 이겨내야 하는 거다. 그렇게 끝까지 가정을 책임지고 지켜낼 자신 없는 사람은 결혼할 자격이 없다. 서로 배려하고, 욕하거나 때리지 말고, 도박에 빠지거나 사기당하지 말고, 정서적 경제적으로 가정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책임감이고 그게 어른이다. 그럴 자신 없는 사람들은 결혼하면 안 된다. 혼자 살아야 한다.

2부: 간병인 '에밀리아'의 이야기


2부에는 오르나보다 더 불쌍한 여자가 등장한다. 에밀리아다. 너무 힘들고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서 성당 신부님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다. 고해성사를 통해 겨우 고된 인생을 버텨낸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은 사이비 종교나 이상한 사람에게 당할 위험이 크다. 조금만 잘해줘도 무너지기 쉽다. 그걸 이용한 범죄자에게 당해 결국 죽고 만다.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인생, 외국이라서 말 통하는 사람조차 없는 삶, 얼마나 외로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에서는 그런 이민자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이 세상에는 이렇게 힘들게 살다 죽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약간 허황된 부분도 있다. 영화 <럭키>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에밀리아처럼 자기 인생을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살다 보면 저절로 사람이 붙게 마련이다. 의지할 친구가 생기고 인맥 형성이 저절로 된다. 소설 속 에밀리아도 다른 간병인들과 친목도모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그 부분이 약간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렇게 힘들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동료들과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는 게 어색했다.

소설 제목이 세 여자인데, 실제로 세 여자가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세번째 여자는 '엘라'다. 앞의 두 여자와 달리 미친 듯이 똑똑하고 현명하고 영리하고 능력 있는 여자다. 지능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바로 이성에 따라 행동하느냐, 감정에 흔들렸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앞에 두 여자는 의지할 가족이 없어서 놈팡이를 만나 감정적으로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말았지만 엘라는 다행히 가족들이 있어서인지 끝까지 이성적으로 행동해서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지는 않다. 1부의 오르나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정을 만들었음에도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가정이 깨져버린다. 게다가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방향의 노력이었다. 바람난 남편은 칼 같이 잘라냈어야 했다. 남아있는 자신의 가정(오르나의 엄마와 오르나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가정을 깨뜨린 사람을 계속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다가 모든 게 망가져버린 것이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원작에는 '도시가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미혼에게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도시가족 역할을 해줘야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어서 그런 말을 썼을 것이다. 꼭 결혼과 출산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내 편 들어줄 가족같은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이 가장 쉽게 내편을 만드는 방법이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과 가족처럼 지내긴 쉽지 않다. 왜냐면 그 사람도 그의 가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하나의 방법이다. 에밀리아처럼 혈연도 지연도 아무것도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는 종교도 의지할 구석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사이비 종교로 빠지면 더 위험하겠지만 제대로 된 종교라면 그 사람 인생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종교가 없는 사람은 종교가 아니라도 이미 믿고 의지할 구석이 든든하게 있는 사람이다.

***

 

마무리하며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글에 자살기도를 했던 소녀가 나온다. 그 소녀는 상담사에게 이 세상에 좋아하는 걸 사소한 거라도 하나씩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듣고 오늘부터 초코우유를 좋아해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가 살아갈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다. 내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줄 음식이든 사람이든 취미든 종교든 뭐든 찾아보는거다. 그렇게 나만의 중심을 단단히 세워나가야 이상한 사람, 이상한 종교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고, 이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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