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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해리엇 비처 스토 < 엉클 톰스 캐빈> 리뷰

by 티라 202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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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비처 스토 <엉클 톰스 캐빈> 리뷰

엉클_톰스_캐빈

 

책 <엉클 톰스 캐빈>은 제목에 '톰'이 들어가지만, 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실화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묘사가 생생하고 내용 전개도 탄탄하다. 보통 100% 상상력만으로 탄생한 작품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훨씬 현장감도 느껴지고 더 구체적이다. 그리고 의외로 노예생활의 비참함보다는 밝은 면을 많이 보여준다. 그리고 눈앞에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인물의 성격을 치밀하게 묘사해서, 등장인물이 여럿 나와도 헷갈리지 않는다. 책에서는 노예 제도에 대해 크게 미국 북부와 남부, 그리고 기독교의 입장을 다룬다. 노예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기독교가 나아갈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분명 의도는 좋은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남북전쟁을 촉발했다는 말도 듣는다. 그만큼 당시 미국 사회에 치열하게 존재했던 갈등에 대해 다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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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독교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기독교를 빼면 얘기가 안될 정도로 노예제와 얽힌 기독교 문제를 꽤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 주인과, 주인에게서 기독교를 배운 노예들은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노예제가 기독교 정신에 완전히 반대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노예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부 백인은 눈과 귀를 막고, 성경이 노예제를 옹호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철석같이 믿는다. 마음씨 좋은 주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노예들도, 주인이 갑자기 사망하면 언제든 쓰레기 같은 놈에게 팔려갈 수 있고 부모와 자식이, 아내와 남편이 헤어질 수 있다. 아무리 잘해줘도 노예 신분인 한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단란한 가정을 깨뜨리는 것이 기독교에서 바라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는 노예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는 걸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평등한 존재이므로 노예 제도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당시 미국의 일부 목사들은, '성경에서 노예 제도가 정당하다고 말한다'고 주장한다. 아마 노예 제도에 대한 마음속 불편함을 신앙을 핑계로 정당화하고, 마음 편히 노예를 부리려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그런 목사들이 생겼을 것이다. 이들은 앵글로색슨족이 아프리카 인종보다 우월하므로 당연히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이는 독일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마치 게르만족이 더 우월하므로 유대인은 말살시켜야 한다는 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나치와 다를 바 없는 잔인한 발상이다. 그래서 처음엔 작가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건가 싶었는데, 후반부로 가면 잘못된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교인들을 비판한 것이지 기독교 정신은 옹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톰과 에바라는 두 인물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잔혹한 노예 세상에 강림한 두 천사

톰은 어느 남부 농장에서 일하는 충직한 노예다. 그는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며 굳건한 믿음의 탑을 세운다. 문맹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인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부탁해서 나중에는 거의 살아있는 예수님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신앙심을 내뿜으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 이에 감복한 동료 노예들이 톰 목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까지 아니더라도, 꽤 독실한 교인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예라는 특수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감화되는 모습을 보며, 초창기에 예수를 따르던 가난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결국 기독교의 본래 정신을 아는 주인들은 노예제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해방문서를 나눠준다.

'에반젤린'은 노예를 부리는 농장의 주인집 딸로, 노예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널리 퍼뜨리는 인물이다. 톰이 목사 느낌이라면, 에바(에반젤린의 애칭)는 천사 느낌이다.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에 푸른 눈,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이 여러 번 자세히 묘사되며 천사를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일부 백인들은 노예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지만, 대부분은 백인과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백인들도 흑인을 백인 아래로 본다. 그러나 '에바'는 노예들을 진심으로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고 스킨십도 꺼리지 않는다. 반면 북부에서 찾아온 에바의 고모는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긴 하지만 살이 스치는 것도 혐오하고, 기본적으로 노예들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불성실하다고 믿는다. 이런 고모가 부리던 노예 '톱시'는 똑똑하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 없어 비뚤어진 성격의 소녀다. 고모는 톱시를 바르게 가르치려 노력하지만 허사다. 이때 에바가 톱시에게 다가와 눈물 흘리며 진심으로 톱시가 잘되기를 기도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결국 '진정성'이 전부다. 에바의 진심에 감동한 톱시는 마음의 문을 열고 바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고모도 기독교를 믿는 신실한 신자지만, 에바를 만나 달라진 톱시를 보고 나서야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깨닫고 톱시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길 가는 거지도 예수님 모시듯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정신, 그게 고결한 기독교 정신인 것이다.

책 <엉클 톰스 캐빈>은 진정한 기독교는 노예제를 옹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예든 주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종교'라는 메시지를, 주인공 '톰 아저씨'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이비 종교와 진실된 종교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 기독교든 불교든 힌두교든 간에,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자세로 살아갸아 한다. 진정으로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게 누구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사랑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이 거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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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이들이 원하는 세상

존 해리스는 자유를 위해 탈출한 노예다. 그는 온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도망쳐 자유를 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솔직히 작가 입장에서는 자유와 가족을 되찾은 시점에서 충분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통해,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여기서 좀 대단하다고 느꼈다. 모든 게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는데, 다시 그걸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고 하는 모습에 놀랐다. 그의 열정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던 열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해방됐다고 끝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제대로 된 국가로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그들처럼, 존 해리스라는 인물도 그런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는 이미 평화와 행복을 찾은 캐나다를 떠나, '라이베리아'로 간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쉴 수 있으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지금 비록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이곳은 그의 고향이 아니다. 노예로 살았던 기억 때문에 미국도 고향으로 여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 남부 농장에서 탈출한 수많은 노예들의 진정한 고향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 부분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서 남의 손이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든 내 나라에서 살고자 피 터지게 노력했던 선조들이 떠올랐기 때문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가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국민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타지로 이민 간 한국인들도 돌아올 고향이 있다는 것 자체에 마음 한편이 늘 따뜻할 것이다. 존 해리스가 원한 것도 바로 이 느낌이다. 교육에 대한 갈망으로 캐나다에서 대학까지 마친 그는, 자신만 성장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모든 해방 노예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국민이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꿈을 꾼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고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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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도 회사의 노예인데

이 책에 나오는 친절한 주인들은 노예에게 채찍질은커녕 일처리를 이상하게 해도 내버려두고, 가족처럼 지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도 이 집 노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실제로 마음씨 좋은 주인이 해방 문서를 줘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 노예들이 이해가 간다. 여길 떠나 다른 곳에 가도 이만큼 행복하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허점이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갑자기 하던 사업이 잘못돼 온 집안이 빚더미에 앉거나 주인이 예상치 못하게 사망할 경우, 모든 행복은 산산이 부서지고 노예들은 여기저기 팔려가는 신세가 된다. 엄마와 딸이 눈물 흘리며 이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 다른 곳으로 팔려가고 그곳에서 새 가정을 꾸리기를 강요받기도 한다. 심하면 채찍질하는 쓰레기 같은 주인을 만날 수도 있다. 아무리 잘해줘도 노예는 노예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장 직장에 생계가 달려있는 현대의 사람들도 당시 미국 노예와 처지가 비슷하다. 맘대로 그만둘 수도 없고, 회사가 나를 (일로) 채찍질해도 참고 견뎌야 한다. 여기를 그만둬도 달리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농담으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공노비, 사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사노비라고 말하기도 한다. 농담 같은 진담이다. 가끔 유튜브나 주식, 코인 등 다른 길을 개척해서 노비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를 얻은 도비들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 책에 나와있다. 내 인생은 내 손에 달려있다. 지금 받는 월급에 안주하며 자발적인 노예로 죽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자유로운 도비가 될 것인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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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 평소보다 많이 길어졌는데, 그만큼 내용이 많고 깊이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드라마로 제작하면 상당한 분량이 나올 정도다. 읽고 난 소감은, 너무너무 좋았다! 정말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오래된 고전이고 베스트셀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옛날 책 같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칠 뿐만 아니라 종교까지도 다루는 엄청난 책이다. 작가 본인도 이 책 이후로 이만큼 잘 나가는 책은 다시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마 평생 이 책 한 권으로 먹고살았을 것이다.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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