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철 <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이 싫다> 리뷰
책 <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이 싫다>에서, 특정 인물의 자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져서 섬뜩했다. 시계추처럼 조용히 흔들리는 목 메단 사람의 모습을 묘사할 때마다 주인공이 느끼는 슬픈 감정보다는 소름끼치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추리소설' 하면 또 '살인사건' 아니겠는가. 비극적인 가족사에서 학원물로, 그리고 다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추리소설로 장르가 뒤바뀌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자살뿐만 아니라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사고 현장)', '불법 촬영범죄', '소아성애', '동성애', '학교폭력'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 장르를 선호하지 않지만, 추리소설인 줄 모르고 읽었고 내용 자체도 가족애를 다룬 감동적인 부분이 많아서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혔다. 그리고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반전도 많아서 다 읽고 나면 뿌듯함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온다. 완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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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읽으면서 살짝 부자연스럽다고 생각됐던 부분도 있다. 첫째, 아무리 그래도 학교 선생님이 학교 아이에게 자살시도를 시키는 건 너무 무리수였다. 뭐 해당 인물에게는 나름의 동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갔다고 본다. 이 부분은 마치 시를 읽을 때 시적 허용으로 문법이 틀려도 넘어가듯이, 추리소설적(?) 허용으로 넘어가주도록 하겠다. 둘째, 담임 선생님이 형사 뺨치게 추리력이 장난 아니다. 아무리 아이들에 관심이 있고 관찰력이 좋아도 이렇게 비상한 추리력을 가지다니 현실에선 정말 보기 드문 선생님일 것이다. 아이들 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선생님도 일단 없고, 관심이 있어도 형사와 공조까지 해가면서 추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까지 펼치는 선생님은 정말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하다. 셋째, 애들이 너무 착하다. 초등학교 6학년 애들이다. 작가가 초등학교 6학년생을 겪어본 지 매우 오래됐거나, 매우 착한 아이들만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나 보다. 아무리 선생님이 관심 가져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더라도, 애들이 환상 속에나 나올 정도로 착하다. 굳이 요즘 애들이 아니더라도, 옛날 초등학생들도 꽤 사나웠다. 이 책에서 '6학년'이라는 언급이 없었다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1, 2학년인 줄 알았을 정도로 애들이 너무 어리고 순수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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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다루는 도덕적 이슈가 두가지 있다. 첫째, 평소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했더라도 범죄자인 경우, 그 범죄를 마땅히 처벌하는 게 옳은 것인가? 둘째, 위기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둘 다 답이 없는 문제고,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이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들이다. 이 책에서는 첫째의 경우 선행을 많이 했으니 용서하자는 입장 같고, 둘째도 좋아하는 사람만 구해도 괜찮다는 입장 같이 느껴졌다. 물론 그 일의 당사자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면 당연히 용서해주고 싶어 진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과연 용서받을 일인지는 의문이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무슨 일 생기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그 사람을 칭송하고,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 인사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범죄자다. 그것도 성범죄다. 이 경우 과연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두 번째, 내가 좋아하는 사람 먼저 구해줘도 괜찮은가? 흔히 '나랑 누구누구가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래?'라는 질문을 농담처럼 그러나 꽤 진지하게 많이 한다. 이 질문이 실제 상황으로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만약 우리 엄마랑 모르는 중년 여성이 물에 빠졌다. 그럼 이 세상 모든 지구인들이 우리 엄마를 구하라고 할 것이고, 우리 엄마 먼저 구해도 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아니라 지인이라면? 그래도 결과는 같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물론 구해줘야 하지만, 내가 아는 지인을 내버려 두고 모르는 사람부터 구하는 사람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면 쉬운 문제 같지만 사실 오래된 철학적 논쟁이다. 바로 '공리주의(상대적인 선)'와 '의무론(절대적인 선)'의 대립이다.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랑 친한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자는 행복의 합계를 중시하므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 살아남아야 내가 더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의무론에서는 둘중 어느 누구를 정해놓고 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솔직히 감정적으로 공감하긴 어렵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 맞는 말이다. 책 속에서 자살을 택한 인물은 아마 의무론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크나큰 죄책감을 느끼고 자살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펄쩍 뛸 일이다. "아니 기껏 사람 구해놓고 자살하다니, 그럼 너의 자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의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좋지 않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럴 때 보면 공리주의 논리가 기괴하기도 하다. 어느 것이 맞는지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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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책 <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이 싫다>에 나오는 다감 선생님은 아이들을 싫어하는 척 하려다가 왕창 좋아해 버리고 마는 츤데레다. 현실에도 이런 훌륭한 츤데레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가정사까지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학교생활은 사랑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교도소를 닮았네, 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키우는 구조네, 하며 말이 많지만 그래도 이 세상의 사회적 약자까지 공평하게 품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민센터에서 취학통지서를 발급해 집집마다 전달하고, 입학식에 결석한 아동을 찾아 출동하는 것이다. 마치 국민건강보험 같은 존재가 바로 '학교'다. 여러모로 비효율적이고 단점이 더 많아 보이는 시스템 같지만, 사실은 국민 모두를,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을 빠뜨리지 않고 안전하게 돌보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다감 선생님처럼 따뜻한 츤데레 선생님이 많이 계실수록, 나중에 그 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됐을 때 이 험난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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