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경 <나는 할머니와 산다> 리뷰
책 <나는 할머니와 산다>는 청소년 소설이라서 어른들도 가볍게 읽기 좋다. 책 속 중학생들의 말투는 어른이 어설프게 10대 말투를 흉내 낸 것 같다. 뭔가 10대 특유의 느낌이 2% 부족하다. 하지만 만약 정말 10대들이 쓰는 말투 그대로 책을 썼다면 어른들은 못 알아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10대 언어를 공용어(?)로 번역해놓은 것 같다. 아무튼 책의 주인공인 중학생 소녀의 말투는 어른과 아이 그 어디쯤이다. 중간에 할머니의 영혼이 끼어들며 말투는 더욱 애매해진다. 게다가 남들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애어른이다. 주인공이 마음속에 상처를 끌어안고 살다가 치유되는 이야기다.
제목이 '나는 할머니와 산다'지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시다. 난 제목만 보고 할머니와 오순도순 사는 손주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또 하나의 반전은 엄마다. 책에서는 '엄마'를,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다가 돌아가시니까 그제야 굿을 하며 비는 못된 며느리로 서술했지만 알고보니 아니었다. 또 나쁜 아이처럼 묘사되던 '은혜'가 떡볶이 하나로 순식간에 절친이 되고, 일진 같던 '한세영'은 불쌍한 아이로 전락한다. 그리고 가짜 엄마였던 주인공의 엄마는, 책의 후반부에서는 진짜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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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와 엄마를 만나며
이 책에서는 '핏줄'이라는 게 '가족'과 무슨 상관인지를, '엄마'와 '고모'를 통해 보여준다. 보통 가족은 핏줄로 연결된 사이를 뜻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주인공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현재 같이 살고있는 엄마를 '가짜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만나고 난 뒤에야, 같이 살고 있는 엄마가 진짜 엄마라는 걸 깨닫고 울음을 터뜨린다. 나도 공공장소가 아닌 집에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펑펑 울었을 것 같다. 작가는 '진짜 엄마'란, 단지 생물학적으로만 엄마인 게 아니라 때로는 자녀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릴 줄 아는 엄마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주인공 가족이 고모를 만났을 때는 진짜 가족인데도 다들 어색해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유품을 전달받고나서 꿈에서 할머니를 만난 고모는, 그제야 마음 속 맺힌 한이 풀리며 시원하게 제 갈길을 찾아 떠난다. 여기서 판타지적 요소가 살짝 나온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가는 부분이 시계와 꿈을 통해 모호하게 표현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소원을, 환상의 힘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어쩐지 설득력 있다. 할머니가 꿈에 나오는 일은 이상하게 믿음이 가고, 진짜 할머니의 영혼이 잠시 찾아오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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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과 가족의 의미
책 <나는 할머니와 산다>에서는 혈연관계로 연결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자신의 정체성과 기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그분들의 자손이고, 그분들을 통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비록 조부모님까지밖에 모르지만, 그 위로 위로 쭉쭉 연결되어 조선시대, 고려시대, 원시시대까지 연결된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나(자아)와 이 세상(세계)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입양된 사람들은 뿌리가 끊겨있다. 나와 세상이 동떨어진 느낌이다. 왜 해외에서 잘 자리잡은, 입양된 분들이 굳이 친부모를 찾아 고국에 돌아오겠는가? '핏줄'은 나와 세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내 부모를 찾는 일은, 내가 우주의 빅뱅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거쳐 지금까지 흘러온 그 모든 역사의 일부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뿌리를 찾아야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진 게 아니구나, 나도 이 세상의 일부로서 연결되어 있는 존재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모가 갑자기 주인공 가족과 살림을 합치진 않는다. 고모는 핏줄만 확인한 후 원래 인생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행복하게 돌아간다. 고모는 이제 자신의 뿌리가 어딘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주인공이 친엄마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전에 친자식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러 온 친엄마는, 주인공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가끔 편지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가끔 놀러 와도 되냐고 묻는 고모처럼, 어색하게 주인공 가족과 연결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양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인공과 나는 동시에 정신이 번쩍 난다. 진짜 엄마는 저분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서로 오래 떨어져 살다보니, 다시 만나더라도 각자의 인생이 있어서 쉽게 합쳐지지 않는다. 책에서는, 고모와 친엄마 둘다 결혼하러 해외로 떠나면서 주인공과 완전히 분리된다. 하지만 굳이 그런 분리장치가 없더라도 쉽게 다시 하나의 가족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 오랜 세월 함께 한다는 건 그런 거다. 강아지도 입양해서 정성껏 키우다 보면 가족이 되듯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한 세월이 그들을 가족으로 엮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돈의 팔촌까지 가족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핏줄로 연결되어 있더라도, 사랑하며 함께 쌓은 시간들이 없다면 실질적인 가족으로 느끼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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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이 책에는 단순히 입양된 사람들에 대한 편견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가족에 대한 편견까지 되돌아보게 한다. 입양가족은 법적으로만 가족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마음에 따스한 안정감을 주는 가족이다. 가족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사랑'이다. 그래서 나와 오랜 세월 우정을 쌓은 친구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이다.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와 핏줄이 전혀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친구를 생각하면 따뜻한 위로를 느낀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오랜 시간 쌓은 정서적 교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기쁘거나 슬플 때, 동물이 행복하거나 괴로워할 때 동물과 나는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위로해줄 수 있다. 그런 게 가족이다.
아기를 낳은 산모들은 아기를 보자마자 모성애가 폭발하며 감동이 밀려올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아직 가족이 되는 시간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커플이라도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는 가족으로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아기와 산모는 방금 만난 존재일 뿐이다. 가족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입양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어색하다. 하지만 가족이 되는 시간을 견디고 나면, 그제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편견에 가려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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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이란
꼭 입양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많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기보다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누구나 보통의 가족이 되길 바랄 뿐, 별난 가족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알고 보니 입양된 사람이었다고 해서 놀라지 말자.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정상이고 기준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으로 단정지을 순 없다. 주인공은 자신을 입양한 엄마가 주위 사람들에게 대단하다고 칭찬 받는 게 불편하다고 말한다. 별난 가족이 아닌, 보통의 가족이 되고싶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으로는 보통의 가족이다. 언젠가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아무런 고정관념 없이 편안한 시선으로 다양한 가족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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