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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김호연 < 불편한 편의점> 리뷰

by 티라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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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리뷰

불편한_편의점

 

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인 편의점을 무대로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쳐가지만, 그 중심에는 독실한 기독교인 편의점 사장님과 서울역 노숙인 출신의 독고 씨가 있다. 익숙한 소재인 편의점과, 익숙치 않은 노숙인이 어우러져 소설이 익숙한듯 신선하게 전개된다. 웃긴 건 서울역 노숙인은 누구나 싫어하는 대상인데 그런 독고 씨가 이 책의 주인공이자 모든 스토리를 하드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도 없고 냄새난다고 무시당하는 대상인 지하철 노숙인은 사실 이 책처럼 수많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뿐이다. 작가는 일부러 독고 씨가 과거를 말하지 않게 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독고 씨가 진짜 기억이 안나나보다, 하고 포기할 때쯤 급작스럽게 그의 과거가 밝혀지려고 해서 급반전을 준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이 돌아가며 한 챕터씩 차지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쳤다는 것이다. 편의점이라는 곳이 원래는 마트보다 비싼 대신 24시간 운영해서 편리한 곳이었는데, 요즘은 각종 할인행사를 365일 진행할 뿐만 아니라 저렴하게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장소로 바뀌었다. 편의점이 살아남기 위해 일상 속에 스며든 것이다. 나도 퇴근길에 배도 안고픈데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아무거나 사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저렴하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 수중에 돈이 없는데 각박한 이 세상 속에서 절망과 환멸을 느끼고 편의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 마음 속에 조용히 독고 씨가 스며든다.

독고 씨에게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작은 친절, 그게 전부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조용히 챙겨준다. 그래서 제목이 '불편한 편의점'이다. 편의점 카운터에 있는 사람은 게임 속 NPC처럼 나에게 관심이 없는 기계같은 존재여야 마음이 편한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니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점점 독고 씨의 츤데레 같은 친절에 빠져든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독고 씨에게 자신도모르게 털어놓는다.

독고 씨의 비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비밀로 간직할 줄 알았던 독고 씨의 과거 이야기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사실 노숙인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노숙인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태어나 어딘가에서 직업을 갖고 일하다가 어떠한 자신만의 사연을 품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상처입은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다고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처입은 사람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위해서는,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아직 회복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낫지 않는다. 아마 노숙인들이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사지멀쩡한데 왜 게으르게 저러고 있냐는 시선도 있지만, 그들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이다. 몸에 큰 상처를 입으면 병원에 입원하지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면 갈 곳이 없다. 정신병원이나 마음상담소가 있긴 하지만, 마음건강이 약해진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곳에 찾아간다는 사실 자체도 또 다른 상처가 된다.

독고 씨도 과거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노숙인이 되진 않겠지만, 슬픔을 술로 달래다 알콜중독에 빠진 독고 씨는 알콜성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노숙인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술이 무서운거다. 개인적으로 술과 담배는 이 세상에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지만, 술과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어마어마해서 없어지긴 힘들 것 같다. 독고 씨의 비밀은 바로 바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저씨라는 것이다. 아내도 자신을 떠나고, 자식도 자신을 떠난 충격에 독고 씨는 자발적으로 술에 빠지고 기억을 잊는다. 어떤 집단에든 인간은 소속되어야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진다. 반대로 소외감을 느끼면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인간의 행복에 소속감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왕따 당한 거나 마찬가지니 얼마나 충격이 클지 상상도 안 된다.

가족들이 아빠를 외면한 이유는, 아빠가 비밀을 만들고 그걸 계속 숨겼기 때문이다. 작은 비밀이 아니라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각한 비밀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결국 독고 씨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비밀은 가족들에게 알려지고, 실망한 가족들은 그를 떠난다. 만약 독고 씨가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놨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래도 실망한 가족들은 똑같이 행동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속였다는 미안함은 덜었을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거대하고 굳건한 산 같은 존재지만, 거짓은 얇은 휴지조각처럼 아무리 진실은 덮으려해도 금방 들춰지는 얄팍한 존재다. 그리고 진실을 덮으려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휴지조각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휴지조각을 산처럼 많이 쌓아놓아도 바람 한번 훅 불면 거짓은 무너지고,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난다.

독고 씨는 의료인이었다. 그가 근무하던 병원의 원장은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수술을 돈 때문에 강행했고 결국 의료사고를 내지만 뻔뻔하게도 끝까지 이를 은폐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다시는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는 원장의 협박에 독고 씨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내적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가족이기에 더욱 털어놓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의료사고를 쳤다는 사실에 대한 비난과 실망의 시선을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결국 그는 모든 기억을 잊고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노숙인이 된다.

작은 친절의 씨앗

악행은 악행을 부르고, 선행은 선행을 부르는 법이다. 독고 씨의 작은 선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스스로를 돕게 된다. 게임만 하는 아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한 작가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만두고 싶은 회사를 생계 때문에 억지로 다니며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아저씨의 이야기도 들어준다. 누군가가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큼 힐링되는 건 없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점 보러 다닐 돈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더 효과가 좋다는 말도 했다. 점술가나 정신과의사나 결국 고민거리를 들어준다는 점에선 일치한다는 의미다. 독고 씨는 대단한 위로의 말은 해주지 못하지만 묵묵히 그들의 고민상담을 해준다. 그 사람의 입이 열리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내가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방에서 게임만 하는 겜돌이로 변한 아들에게 잔소리만 늘어놓다 서로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 안타까운 모자를 보고, 독고 씨는 해결책을 준다. 아들이 좋아하는 작은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편지와 함께 조용히 방에 두고 나오라고 조언한다. 음식. 먹거리. 부담없이 호의를 표현하기 딱 좋은 수단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작은 음식 하나를 사서 건네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건 없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딸기우유를 주며 고백하는 남학생, 회사에서 관심있는 여직원에게 초코마카롱 하나를 슥 건네는 남직원, 아내와 다투고 냉전 중이던 남편이 퇴근길에 사온 귤 한 봉지... 이 모든 소소한 먹거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독고 씨는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다가 문득, 아 나도 그렇게 했으면 되겠구나 하고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어버린다. 이렇게 남을 도우려던 행위가 나에게도 이득이 될 때가 살다보면 꽤 많다. 남을 돕다보면 거의 99% 확률로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물론 내가 여유가 되는 선까지만 도와줘야 하는 건 당연지사. 독고 씨는 그렇게 남의 도움도 받고 자신의 마음도 치유되어, 다시 멈춰버린 그의 시계가 작동하게 된다. 모든 걸 잊고 노숙인으로 지내며 멈춰두었던 그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알바하던 '시현'이라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독고 씨의 조언으로 남을 돕기 위한 목적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가 더 좋은 직장으로 스카웃되는 기회를 얻는다.

불편한 편의점


책 <불편한 편의점>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우리 일상 속 이야기들이라 부담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고,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 속 상처들을 치유해주는 책이다. 비록 당장 편의점에 가서 내 마음을 막 털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물건을 사면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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