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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기욤 뮈소 < 천사의 부름> 리뷰

by 티라 2021.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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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 <천사의 부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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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사의 부름>은 역시 기욤 뮈소구나 하게 만든다. 기욤 뮈소는 숨막히는 추격전에 로맨스까지 완벽하게 엮어낸다. 프랑스 사람은 원래 로맨스 없이 못산다. 노화도, 신체적 장애도, 어린 자녀도, 이혼 경험도 진정한 사랑, 찐사랑을 원하는 그들을 막지 못한다. 프랑스 태생인 작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두 주인공은 서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고,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끌림의 감정이 천천히 쌓인다. 그리고 프랑스는 맛있는 요리와 진정한 사랑을 중시하는 느긋하고 로맨틱한 나라다. 그래서 요리사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로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에는 요리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무슨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만 들어도 로맨틱하고 엄청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남자는 여자를 구해주고 여자는 인질로 붙잡히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걸 알았는지, 작가는 여자 악당에게 인질로 붙잡힌 남자주인공을 여자주인공이 구하는 설정으로 신선함을 선사한다. 물론 핵심 피해자는 여성이고 핵심 악당은 남성이지만 그들은 대사도 별로 없고 중심 인물은 아니다. 이때 핵심 악당이 러시아인인데, 혹시 러시아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기분나빠하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프랑스인 입장에서 러시아인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면 프랑스인 눈에 비친 프랑스인은 로맨스를 좋아하는 귀여운 사람들인 반면 러시아인들은 보드카로 맹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언어도 뭔가 불어는 봉봉봉 울랄라 하는데 러시아는 스빠씨바니까 말이다.

인물 묘사 끝판왕

기욤 뮈소의 다른 소설 <브루클린의 소녀>도 어린 소녀 구출극이라서 처음엔 약간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읽다보면 완전히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공통점은 민간인이 오로지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서 결국 인질을 구해내고 범인을 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 흐름이 같은데도 전혀 다른 소설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인물에 대한 치밀한 묘사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외국소설을 읽다보면 인물이 많이 등장하면 점점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데,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는 한번도 헷갈린 적이 없다. 그만큼 인물 묘사가 충실하다. 해당 인물을 소개할 때도 단순히 외모만 묘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들의 느낌을 정확히 짚어내서 금방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해당 인물이 직장에서 어떻게 근무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꽃집을 운영하는 주인공이 새벽 꽃시장에 가는 과정, 가서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 꽃시장의 광경을 눈앞에 선하게 떠오를 정도로 막힘없이 묘사해준다. 이 정도로 묘사하면 도저히 그 인물을 다른 인물과 헷갈릴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작가의 다른 작품 <종이여자>에서 밝혀진다. 소설 <종이여자> 속 주인공은 평소 소설을 구상할 때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나서 소설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인물 서사부터 확실하게 잡고 나서 스토리를 짠다는 것이다. 얼핏 주인공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소설의 전체 스토리와 무관해보이지만, 사실 스토리 구상보다 먼저 해야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진실이 항상 아름다울까

주인공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정말 열정적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던 사이였던 아내와 이혼 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기를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괴로움이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기사가 떠서 이혼을 하게 됐는데, 알고보니 아내는 자신의 살인죄를 덮기 위해 수를 쓴 것이었다. 만약 아내가 살인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가정이 무너지고 식당은 문을 닫았을 것이다. 회사는 재정적으로 이미 파산 직전이었고, 소중한 아들 찰리는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주인공이 배신당했다는 괴로움에 자살 직전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굳건히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사랑의 힘으로 이겨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감추려고 한 댓가로 그들은 오랫동안 고통받는 삶을 산다.

셰익스피어는 진실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했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거짓은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고, 한번 생긴 균열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커지고 결국 많은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나버린다. 우리는 항상 진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조금씩 뒤틀릴 것이다. 나의 세계는 내 손에 달려있다. 내가 거짓말을 시작하면 내 세계는 불완전한 거짓말로 가득한 세계가 된다. 내가 진실만을 말한다면 내 세계는 굳건한 진실 위에 세워질 것이다. 진실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진실은 모든 곳에 숨쉬고 있으며, 거짓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물거품에 불과하다.

매너 있는 남자 기욤 뮈소

작가는 소설이 끝나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부분까지 다 읽게 만든다. 알 수 없는 외국 이름만 줄줄이 나열하거나, 독자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고 누가 읽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썼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에서 작가로서의 센스가 느껴진다. 이 글을 그 고마운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독자들도 볼 거라고 생각해서 배려해준 그의 마음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가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마워한다는 것을 독자들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고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가 어떤 성격인지는 가까운 지인들만 알겠지만, 독자로서 본 그는 매너 있는 남자였다. 아직 40대인만큼, 앞으로도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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