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소설

스미노 요루 <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리뷰

by 티라 2021. 5. 23.
반응형

스미노 요루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리뷰

또다시_같은_꿈을_꾸었어

 

스미노 요루의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는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단순하고 가벼워서 술술 읽히는 책이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의 인생을 쭉 보여주면서, 내 인생은 내 손에 달려있다는 걸 은은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부모님이 맞벌이라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사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초등학생 여자애가 혼자 몇 시간씩 돌아다닌다는 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니까 속세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주인공은 책을 좋아하는 초딩이라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이 한심해보인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안좋아하는 애들을 한심하게 여길 필요는 없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다. 오히려 책을 좋아한다는 건 정신적으로 어딘가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정신적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바쁘신 주인공은 책이 부모 역할을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초딩 때는 조금만 똑똑해도 주변 애들이 멍청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똑똑하고 멍청한 것의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인생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나였다

이 소설에는 큰 반전이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읽으면서 반전이 나오기 전에 알아챘을 수도 있다. 주인공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이다. 그렇게 다니며 남의 집에도 스스럼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서 과자를 먹는다. 근데 그게 알고보니 남의 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중학생 언니, 이십 대 언니, 그리고 할머니를 만난다. 중간에 삼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는 건너뛴 것 같아 아쉽다. 주인공은 호기심 많고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초등학생다운 질문을 통해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게 변화를 준다. 그들의 편협한 시각을 깨뜨리고 더 넓게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생각을 고쳐먹고 다른 선택을 하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 무슨 소린지는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나 자신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주인공이 만난 중학생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손목을 긋는 게 취미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인생을 포기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살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나면 끔찍한 악몽에 평생 시달리지만, 자기 자신을 죽인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후세계는 죽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으면 끝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만약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이번 생을 끝내도 다음 생에 자신이 지은 죄의 댓가를 치러야할 수도 있다. 마치 오늘 숙제하기 싫다고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과 같다. 오늘 카드할부를 긁고 다음달과 다다음달의 나에게 힘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고통을 미룰 뿐, 언젠가는 치러야 한다.

책 <지대넓얕>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와 세계는 분리되어있지 않다. 내가 죽으면 내 손으로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 하는 것은 현대인의 착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나 없어도 다른 우주는 어찌어찌 돌아간다. 근데 내 우주는 나 없인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아끼는 사람들, 나만의 아픈 상처와 즐거운 추억들로 이루어진 내 우주는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나와 묶여있다. 그리고 자살은 내 손으로 나의 우주를 폭파시키는 일이다. 그건 내 우주와 가까이 있던 다른 우주들에도 균열을 일으킨다. 그 위력이 크다면 멀리 있는 우주들에게도 균열을 일으킬 것이다. 뉴스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것처럼 말이다.

삶과 죽음은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어찌보면 단순하다.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책 <지대넓얕>에서 '나'는 관찰자로서의 하나의 '시선'이라고 설명한다. 내 팔 한쪽, 다리 한쪽이 곧 나 자신은 아니다. 내 몸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뇌? 심장? 아니다. 애초에 몸과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다. 그렇다면 내 감정이 나일까? 그것도 아니다. 감정은 스쳐지나갈 뿐이다. 내 몸 안에서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 관찰자가 진정한 나 자신이다. 자살은 내 몸을 파괴하지만, 몸만 파괴한다고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자살은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것인데, 내 정신은 자살해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살은, 자살 이전의 나의 고통을 자살 이후의 나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내 우주에서는 내가 신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손에 달려있다. 내가 당장 뭘 먹을지,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성매매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주인공이 만나는 이십대 여자는 자신이 계절을 파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그는 계절이 아니라 성행위 서비스를 파는 사람이다. 성매매는 몸을 파는 행위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혼을 파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진심으로 원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사랑에 기반한 성관계라면, 내 의식이 성행위 중인 나를 다른 사람 보듯 관찰할 수 없다. 온 정신이 말초신경에 집중되어 극한의 희열을 느끼며 정신이 먼 우주로 날아간 듯한 기분이 되는 게 정상적인 관계다. 공부하거나 일을 할 때처럼 맨 정신으로 관계 중인 나와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상대방을 이성으로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미화해서 설명한거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돈으로 성행위를 사고파는 것은 인간을 돈 주고 사고파는 노예시장과 근본적으로 같다. 그래서 성 구매자는 성 판매자를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물건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성 판매자를 때리는 것은 폭행이 아니라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이므로 돈 주고 다른 물건을 사면 되고, 성 판매자를 모욕하는 것은 인권모독이 아니라 물건을 대상으로 하는 재밌는 농담이므로 한 인간에게 상처를 준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벌써 몇년 전이지만 성범죄 예방교육 중에 충격적인 내용을 들었다. 한 남성이 성매매를 자주 하다보니 성매매 여성이 아닌 여성과 대화할 때도 조금만 자기 말에 반박하면 '저 10만원 짜리가' 하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릿 속에서 '여자'는 존중받아야할 '사람'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매매는 성 구매자에게도 비참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돈이 아니면 가짜로라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비참하다.

책 속의 여자는 물론이고 이 세상 모든 성매매는 돈을 벌기 위해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다. 돈이 되면 뭐든지 파는 세상이다. 자신의 백성 중에 단 한 사람도 솔로가 없고 모두가 결혼할 수 있도록 만든 세종대왕조차도 성매매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아니 근데 모두 결혼했으면 성매매하는 사람도 다 가정이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는 말도 있고 합법화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나는 반대다. 예전 미국 노예제도도 마찬가지였다. 행복한 노예들도 많았고, 노예에게 잘해주는 좋은 주인들도 많았다. 해방시켜도 떠나지 않는 노예들도 있었다. 그러나 노예제는 폐지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었다.

인간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는 자유를 빼앗는 행위다. 그래서 교육받은 선한 사람은 노예에게도 인간대접을 해주겠지만, 악한 인간의 손에 들어간 노예는 인생이 망가져버린다. 책 <엉클톰스캐빈>에서 그 사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좋은 주인을 만난 노예들도 주인이 죽거나 사업실패를 하게 되면 갑자기 사방팔방으로 팔려가며 가정이 무너지고 인생이 뒤바뀐다. 자기 인생이 자기 손에 달려있지 않고 구매자에게 달려있게 된다. 결국 노예제가 살아있는 한, 노예들은 좋은 주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의 행복이 남의 손에 달려있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 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할 자유가 있는 인간이 행복하다. 성 판매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소름끼치는 행위다.

할머니의 옛사랑

주인공이 만난 예쁜 오두막집에 사는 할머니 이야기는 사실 못 이룬 사랑 얘기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용기내지 못해서 솔로로 늙어가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형벌을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결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고 어떻게 보면 어렵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사랑만 보면 쉬울 것이요,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는 자에겐 어려울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용기 내는 자는 얻을 것이고, 소극적으로 간 보는 사람은 얻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는 이게 사랑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랑을 알아보는 건 간단하다. 마음이 끌리고 몸이 끌리면 그게 사랑이다. 미드 <길모어걸스>에서 로리는 자기도모르게 제스에게 끌려 학교도 빠지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탄다. 로리의 엄마는 삶의 경험으로 단번에 로리가 제스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채지만 정작 로리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그냥 자기가 미쳤었나보다고 말하며 괴로워한다. 그렇다고 사랑하면 학교를 빠져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고, 손을 잡고 싶다면 그게 사랑이다.

 

[북리뷰] 이왕 살아난 거 잘 살아보기로 했다 : 교통사고 극복 에세이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한 교통사고는 더 억울하고 끔찍한 일이다. 작가는 초록불에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고난의 길을 걷는다. 전반적으로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tira.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