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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천선란 < 천 개의 파랑> 리뷰

by 티라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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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천 개의 파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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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떠오른다. 두 작가 모두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았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지만 왠지 결이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과학을 통해 이 세상이 얼마나 놀랍게 발전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 삶 속에서 발전된 기술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이 로봇을 복종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동등한 존재로 함께 같은 감정을 느끼며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그려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과 동물과 로봇이 동등한 존재로 함께 살아가길 작가는 바라는 것 같다.

책 <천 개의 파랑>은, 동물과 인간이 같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한다. 동물이 소중해도 인간과 동물을 같게 취급하긴 어렵다. 소설 속에서 말은 지능이 6세 아이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지능이 비슷할 뿐 엄연한 동물이다. 정말 동물이 인간과 동일하다면, 당신은 위생과 안전을 위해 길거리 노숙자에게 무료로 중성화수술을 시켜줄 것인가? 혹은 길거리 노숙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일정기간동안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안락사시킬 수 있는가? 이렇듯 인간과 동물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심지어 수많은 동물들은 인간에게 잡아먹힌다. 동물을 인간과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권리가 있고, 동물에게는 동물의 권리가 있다. 각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동물과 로봇이 같은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이전에, 동물과 로봇의 경계는 이미 모호해지고 있다.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간과의 교감이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혼나면 시무룩해지고, 주인이 슬퍼하면 다가가 위로하는 동물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동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동물이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그런데 책 <천 개의 파랑>에서는 묘하게 기계도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에서 로봇이 기계적으로 내뱉는 위로의 말을 듣고, 인간은 그저 입력된 결과임을 알면서도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위로의 감정일까, 위로의 단어들인걸까?

이름을 불러주자 로봇은 사람이 되었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동물과 로봇은 철저히 인간을 위해 이용당하고 또 버려진다. 주인공은 이렇게 버려진 로봇과 동물을 감싸안으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사실 책 <천 개의 파랑> 주인공은 동물보다 로봇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근데 그 로봇이 어떤 동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싶다고 해서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동물도 돕게 됐다. 처음 주인공이 로봇에 마을이 끌린 계기는 로봇과의 감정적 교류였다. 주인공은 가족이 있지만 가족들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고, 친구도 만들지 않고 혼자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로봇이 보여준 작은 감정에 크게 흔들린 것이다. 이렇게 감정의 힘은 위대하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는 로봇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는 보통 애정이 가는 것에 이름을 붙여준다. 어떤 사람은 처음 가져보는 명품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서 애칭을 붙여주기도 한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건,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 불러준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행동이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은 이름을 빼앗기고 번호로만 불린다. '이름'에는 그만큼 커다란 의미가 있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은 처음 이름을 갖게 되자 기뻐서 계속 자기 이름을 혼자 불러본다. 책에서 작가가 엄마 보경을 '엄마'로 칭하지 않고 '보경'이라고 이름으로 불러서 자꾸 누군지 헷갈렸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엄마 '보경'은 아이들을 책임지느라 정신없이 삶에 치여 '보경'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모두 버리고 '엄마'로서만 살아간다. 이런 엄마의 삶이 안타까워서 작가가 일부러 '보경'이라고 계속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은 동물을 위해 자신을 두번이나 희생한다. 희생정신을 가진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미 인간과 동등한 존재가 된 건 아닐까? 아니 인간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대부분의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을 어려워한다. 더군다나 사람도 아닌 '동물'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 '콜리'는 자신이 타는 말 '투데이'의 관절 건강이 염려되어 일부러 달리는 말 위에서 떨어진다. 로봇은 얼마든지 부서져도 고칠 수 있고 새로운 로봇을 만들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망가져도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을 읽다보면 콜리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콜리는 그냥 말을 좋아했고, 그냥 말에게 잘해줬고, 그냥 말을 배려해주려고 떨어져 죽었다. 복잡하게 여러 생각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말만 생각하는 모습에서 둘 사이의 순수하고 진실된 우정이 느껴진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 '콜리'의 직선적인 감정 표출은 주변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게 위로가 된다. 로봇을 고쳐준 주인공의 엄마 '보경'은 처음에는 로봇이라는 이유로 콜리를 꺼려하지만 점차 콜리에게 마음을 연다. 콜리는 한때 인기있던 어플 '심심이' 같기도 하다. 말을 걸면 대답을 잘 해서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다. 이렇게 우리는 단순하다. 감정적 소통만 되면 동물이든 로봇이든 심심이든 다 사람으로 착각한다. 책 <천 개의 파랑>에서 보경은 자식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그동안의 삶의 응어리를 콜리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콜리는 로봇이니까 내 말을 듣고 상처받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소문내지도 못하니까 비밀을 얘기하기 딱 좋은 상대다.

책 <천 개의 파랑>에 나오는 엄마는 위로받을 곳이 없다. 자식들에게 하소연하면 자식들이 상처받는다. 서로 위로해주며 살아가면 좋겠지만, 때로 내 고민을 얘기하는 게 상대방을 상처입힐 수 있다. 취업한 친구가 일이 힘들다고 하면 취준생 친구가 상처받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 로봇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아니므로 지치지 않고 얼마든지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너무 기 빨려서, 친구들을 만나면 미친듯이 자기 하소연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로봇은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는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다. 만약 상담을 잘해주는 로봇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로봇에 이름을 붙여주고 소중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에필로그가 더 재밌는 소설

책 <천 개의 파랑>은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그래서 책이 끝나고 나면 뒷부분에 심사위원들이 쓴 글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게 소설보다 더 재밌다. 역시 심사위원이라 그런지 필력이 장난 아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소설계의 뒷면을 조금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자기가 왜 이 작품을 뽑았고 다른 작품은 떨어뜨렸는지에 대해 설득하는 모습이 뭔가 재밌었다. 그들에 따르면 <천 개의 파랑>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내용에 맥락이 있는 반면, 다른 작품은 핵심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한다. 솔직히 난 <천 개의 파랑>도 다른 소설에 비해 핵심축이 허약하다고 느꼈는데, 그럼 다른 응모작들은 도대체 얼마나 허리가 부실했던걸까. 역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쉽지만 끝맺는 건 쉽지 않다. 소설뿐만 아니라 수많은 드라마에서도,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이상한 것들이 꽤 있다. 창의력 넘치는 소재일수록 시작은 쉽지만 마무리가 어렵다. 신기한 소재로 흥미를 끌면서 시작하기는 쉽지만, 신기하고 특이한 결말은 아무도 환영하지 않기 때문일까. 소재는 특이해도 결과적으로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해야 인기를 끈다.

그리고 책 앞뒤로 있는 <천 개의 파랑> 작가의 프롤로그와 수상소감도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재밌었다. 가식이 전혀 없는 단순하고 깔끔한 문장들로 자신을 무심하게 툭 던지듯이 말해주는 게 너무 좋았다. 천선란 작가의 에세이가 있다면 읽어볼 의향이 있다. <천 개의 파랑>도 가슴에 울림을 주는 소설이지만, SF소설 치고는 과학적 상상력과 탄탄한 전개력이 살짝 부족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에서 제일 뚜렷하게 느껴지는 인물은 주인공의 친구 '지수'다. 나머지 인물은 너무 존재감이 없다. 좀더 캐릭터가 확실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기욤 뮈소의 작품을 보면 한 캐릭터에 대해 묘사력이 장난 아니다. 정말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인공이 조연보다는 존재감이 더 커야되지 않을까 싶다. 다들 너무 잔잔하고 차분하고 조용하다. 기운이 없어보인다. 왠지 걸어갈 때도 터덜터덜 걸어갈 것 같다. 막 에너지 넘치는 작품은 아니다. 약간 에쿠니 가오리 느낌도 난다. 소설 분위기가 도서관처럼 조용하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처럼 일본소설을 재밌게 읽는 사람이라면 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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