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리뷰
책 <인생은 소설이다>는 기욤 뮈소 본인의 작가로서의 야심과 욕망, 열정이 다분히 반영된 작품이다. 어쩌면 소설을 가장한 일기장일수도 있다. 아무리 허구의 세계라고 해도, 책 속에는 항상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달인의 경지에 오른 기욤 뮈소도, 결국 이 세상은 누군가가 쓰고 있는 소설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후, 내가 나비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중인지 모른다고 한 것과 같다. 진리는 결국 하나라는 말이 떠오른다. 수천년전 장자가 깨달은 것을 기욤뮈소도 결국 깨달은 것이다. 어떤 기술을 계속 갈고닦아 마침내 장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오히려 모든 동작이 굉장히 단순해진다고 한다. 기욤 뮈소 역시 베스트셀러 쓰는 기계처럼 작품을 찍어내다가 결국에는 장자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자신이 소설을 쓰며 창조주가 된 기분을 누리다가 문득, 이 세상 역시 누군가의 소설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난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맞는 얘기라고 본다. 심지어 과학적으로 증명할수도 있다. 자세한 것은 책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편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인생이 소설이라도 괜찮아
기욤 뮈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작가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돈 많고 능력 있으며 유명세를 떨치는 남자가 항상 등장한다. 마치 기욤 뮈소 본인을 소설 속 인물로 재창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늘 주인공이 여자나 어린아이를 구출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이번 작품에서는 아이를 구출하지 못한다. 대신, 아이를 구출하는 게 소설의 중심축이 아니다. 주인공 '로맹'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 '플로라'와 대화하며 현실과 소설 세계를 넘나든다. 기욤 뮈소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여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속 인물과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 것 같다.
특정 알고리즘을 설정해두면 해당 절차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처럼, 소설 속 인물의 성격도 미리 설정해두면 그 후론 인물들이 알아서 움직이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내가 소설을 써본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다. 예를 들어 편의점 알바생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어떤가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다양한 상황에 주인공을 노출시키는 것 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성격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욤 뮈소는 자신의 다른 소설에서도 여러번 강조하듯이, 소설을 쓰기 전 등장인물의 성격과 가정환경 등 모든 세부사항을 미리 작성해둔다. 따라서 그렇게 확실하게 인물별 성격을 정해두면, 이야기는 알아서 흘러갈 수 있다. 기욤 뮈소는 소설을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이 자명한 진리를 깨닫게 되고, 마침내 아예 <인생은 소설이다>라는 제목의 작품까지 쓰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누군가의 소설이라고 해서 좌절하거나 작가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작가는 여러가지 상황을 설정할 뿐이고, 우리는 우리가 내키는대로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우리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그저 판을 깔아줄 뿐,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 주인공 '로맹'도 그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다.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 '플로라'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반항하지 어쩔 줄 몰라한다. 로맹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만큼은 자기가 전지전능한 신 같은 존재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깨진 것이다. 기욤 뮈소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놀라운 경험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낸 것 같다. 흔히 '이야기가 잘 안풀린다'거나 '다음 전개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털어놓는 작가들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 맘대로 작품을 구상하기 때문에 막힌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의 성격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가 흘러가게 해야 다음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신을 원망하지 말고 주어진 인생에 감사하며 똑바로 살라는 교훈을 준다. 신이 결코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선사해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은 우리를 창조했을 뿐,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의 맘대로 조종할 수는 없나보다. 만약 우리의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를 다 신이 결정한다면, 인생은 공허해지고 답답해질 것이다.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자유의 크기와 비례한다. 한번 자취하기 시작하면 절대 부모님과 같이 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번 맛본 자유는 포기하기 쉽지 않다.
바른 세상을 꿈꾼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로맹이 전 부인 '알민'을 구해준 부분이다. 로맹은 알민 때문에 여러가지로 고통받는 상황인데, 알민이 약물중독으로 기절한 모습을 보고 그냥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까 하는 유혹에 휩싸인다. 알민은 로맹을 악독하게 괴롭힌 나쁜 사람이지만, 로맹의 양심은 '그렇다고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외친다. 기욤 뮈소는 인간에게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로맹은 결국 알민을 모른척하지 못하고 119에 전화를 해준다. 알민은 살아나서 다시 로맹을 괴롭히지만, 세상은 알민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세월이 흘러 알민은 다시 약물중독으로 사망한다. 나도 알민의 죄를 로맹이 단죄할 필요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 나쁜 사람은 자신이 한 모든 말과 행동이 결국 스스로에게 돌아온다는 걸 모른다.
은근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플로라의 딸 '캐리'가 죽은 이유다. 캐리는 부실공사로 덜 닫힌 창문 때문에 낙하하여 사망한다. 웃긴 건 플로라가 웃돈을 쥐어주며 공사를 빨리 해달라고 재촉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난 프랑스 사람은 성격이 급하지 않고 굉장히 느긋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공사가 부실해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까지 써서 후다닥 입주해버린 플로라는, 자신의 딸을 잃는 참혹한 댓가를 치른다. 소설에서 길게 다루지 않고 잠깐 스치듯이 지나간 부분이지만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부실공사의 위험성을 꼬집다니 대단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기욤 뮈소는 예쁜 여자한테 정신 못차리고 잘해주다가 크게 데인 적이 있는 게 틀림없다. 로맹이 알민에게 반해 잘해주다가 크게 데였기 때문이다. 로맹 뿐만 아니라 기욤 뮈소의 수많은 작품 속에는 항상 작가 본인을 투영한 것 같은 남성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는 로맹이 그런 존재다. 로맹은 전직 발레리나이자 현직 모델인 알민의 아름다운 외모에 푹 빠져 더러운 성질머리를 견뎌내며 결혼생활을 유지하지만 결국 파탄나고 만다. 외모를 떠나서 성질머리가 더러운 사람은 결혼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는 배려 없이는 오래가기 어렵다. 그러니 수십 년 세월을 함께 살아야하는 결혼생활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끊임없는 배려와 희생을 필요로한다. 사실 '희생'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다. 상대방에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지적하고 잔소리하며 고치길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기욤 뮈소가 쓴 <인생은 소설이다>에 따르면, 우리를 창조한 신도 우리를 마음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피조물인 우리가 다른 인간들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정말, 인생은 하나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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