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미래로 가는 사람들> 리뷰
책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종교를 까는 것 같으면서 뒷받침해주는 것 같은 책이다. 해설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기반한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주와 미래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오래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진실이고, 어떻게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비밀이 바로 우주와 시간여행이 아닐까 싶다. 진리를 얻고자 하는 이들은 진작에 '모든 것은 하나'라는 것을 깨우쳤지만, '세계'보다 '자아'에 몰두한 보통 사람들은 나 자신의 삶과 죽음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있을 뿐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책을 읽을수록 반복학습하는 기분이다. 이 세상은 모두 하나라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말이다. 그걸 정밀하게 심층분석해서 과학적, 역사적, 종교적으로 알려주는 책이 <지대넓얕> 0편이고, 쉽게 소설로 알려주는 책이 <미래로 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솔직히 놀랐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읽을 때도 적잖이 충격받아서 중간에 자꾸 쉬어가며 읽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훨씬 더 오래전에 나온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했다니 말이다. 이 세상의 진리는 결코 멀리 있지 않았고, 내가 찾고자 했다면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거였다.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와 이 세상은 하나다. 얼핏 사이비 종교같지만 이 진리는 불교와 기독교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라서 그런지, 책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과학지식이 조금 버거웠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빛의 속도로 달리면 왜 시간이 멈추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빛이 굴절하면 왜 멀리 있는 게 더 크게 보이는지도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책은 친절하게도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해준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슬슬 보면서 넘어갔다. 그런데 우주선이 광속에 도달하면 시간이 멈추면서 빛의 입자가 달라붙어 온통 빛으로 가득 차오른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천국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 '성하'가 영혼들과 하나가 되었을때도 그랬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이 세상의 모든 식물과 동물의 영혼조각까지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하나이자 우주 전체가 된 그 모습은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과학과 종교는 대립되는 게 아니라, 같은 진실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해주는 것 뿐이었다. 책 <지대넓얕>도 세상의 진리를 알려주기 위해 역사, 과학, 종교를 다 설명한다. 같은 세상에 대해서 역사는 거시적으로, 과학은 미시적으로, 종교는 비유적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다.
책 <미래로 가는 사람들>의 주인공 '성하'는 우주의 끝으로 가고 싶어한다. 책의 결말에서, 그는 그 자체로 우주가 된다. 성하는 우주의 끝으로 가고, 더 나아가 우주의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바라보고 싶어한다. 신비한 우주의 비밀을 모두 밝혀서 자신의 호기심을 시원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그를 우주의 끝으로 데려다준다. 성하는 우주 밖으로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이 세상은 모두 복사본이다. 우리 몸도 하나의 작은 우주라는 말이 있듯이, 이 우주도 알고보면 별 거 없다. 꼭 속속들이 다 알아야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우주 밖에는 또 다른 수많은 우주들이 있었고 그것도 우리 우주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세상은 서로 다르고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고 모두 같은 모양이다.
"나는 신이 아니야."
성하는 노야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야."
이 책은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니 신은 인간이 만든 존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라고 말한다. 책의 두번째 이야기에서 미래에서 온 인간 '성하'를, 과거에 사는 인간들은 두려워하며 신처럼 받든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두번째 장에서는 원시 인류가 미래에서 온 인류를 신처럼 숭배하고 떠받드는 모습이 나온다. 이건 허구를 다루는 소설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실 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공개하는 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도 우리가 신이나 마찬가지다. 신도 어쩌지 못하는 게 바로 인간들이다. 인간들은 신이 원하는대로 착하게만 행동하지 않는다. 늘 제멋대로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신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가 다 작은 세계고 우주니까 말이다. 작가는 두번째 장을 통해 우리에게 '신'은 우리와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 엄청난 '우주'조차도 신비로운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과감한 용기를 가진 책이다. 우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책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재밌어서 순식간에 다 읽은 책이다. 흡입력도 강하고 흔한 우주라는 소재도 신선한 각도로 재해석해서 좋았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다 읽고 나면 한순간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어질하고 멍한 기분이 든다. 드라마 <시지프스>도 생각난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로 떠나는 사람들이 아닌,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어쨌든 시간여행은 우리에게 항상 신비롭고 흥미로운 소재다. 이렇게 다각도로 해석되는 게 참 재밌고 언제 봐도 묘한 기분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타임머신이 과학적으로 가능해질 것 같은 기대감도 든다. 그러나 그 결말은 항상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가 존재하며 살고 있는 '현재(present)'가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알려준다. 영화 <어바웃타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자꾸 과거로 돌아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그저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더 과감하게, 우주 밖으로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말해준다는 면에서 현재를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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