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 <유원> 리뷰
책 <유원> 리뷰
책 제목 '유원'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작가 백온유의 이름을 거꾸로 발음한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주인공에게는 항상 작가의 영혼이 투영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책표지는 미술작품 '세친구'라고 한다. 그런데 두 사람만 표지에 나온다. 주인공 유원과 언니 유예정인 것 같다. 유원의 언니 '유예정'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람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관통하는 인물이다. 유원은 뉴스에 나온 화재사건의 주인공이다. 수많은 응원의 댓글을 받았지만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인터넷 기사 속 인물의 실제 삶이 어떤지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 보통은 평범한 군중 속에 섞여 조용히 사는 게 편하다. 그리고 유원이 받는 관심에는 가족의 죽음이 얽혀있다. 교회 사람들이 무려 12년이나 언니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와주지만, 고등학생 유원은 이를 불편해한다. 유원은 화재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편해한다. 그리고 나도 그 불편함을 같이 느꼈다. 그런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니, 그 불편함이 사라져있었다. 유원이는 책의 끝에서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었고, 그래서 내 마음도 같이 편해졌나보다. 상처받은 유원이의 비뚤어진 시선으로 볼 때는 모든 친절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상처를 극복한 유원이의 마음으로 다시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첫번째 치유 : 유예정과 신아 언니
유예정은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그래서 목사님과 신아 언니가 12년이나 기일마다 유원이네 가족을 찾아온다. 참 마음 따뜻하고 고마운 일이다. 감사한 마음에 부모님은 목사님에게 홍삼세트와 헌금을 챙겨드린다. 아름다운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지만, 유원이 눈에는 모든 게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직 언니의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아 언니가 자신을 통해 언니를 추억하는 것도 싫고, 교회 사람들이 맨날 똑같은 언니 관련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나 책을 잘 읽어보면, 목사님과 신아 언니가 유원이 부모님과 유원이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부모님은 자식을 잃었다. 12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기일이 되면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이 찾아와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신아 언니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유원이를 위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역할을 해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친구 역할을 해준걸 보면 신아 언니가 얼마나 유원이를 배려해줬는지 느껴진다. 친구 예정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랬을 것 같다. 나중에 수현이와 절친이 되면서, 유원이는 드디어 신아 언니를 놓아준다. 사람은 누구나 절친이 필요하다. 마음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말이다.
두번째 치유 : 아저씨와 수현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가족이면 어떤 기분일까? 유원이는 어쩌다 수현이와 친구가 되지만, 알고보니 수현이는 '아저씨'의 딸이었다. 아저씨는 화재사건에서 유원이의 목숨을 구해주다가 한쪽 다리를 잃는다. 그러나 아저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12년이나(!) 유원이네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원이는 아저씨를 싫어한다. 근데 수현이도 아빠를 싫어한다. 알고보니 아저씨는 돈을 착실히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화재사건 당시 많은 성금을 받았음에도 이를 성실히 사용하지 못하고 날려버린다. 이건 '경제적 학대'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는 것도 학대의 일종이다. 아저씨 편을 들고 싶진 않지만, 왠지 아저씨는 돈을 빌려서 사업하는 방법밖에 몰랐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원이는 아저씨의 자식들인 수현이, 정현이와 친해지면서 아저씨도 이해하게 된다. 수현이와 정현이도 아저씨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들이었고, 같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연다. 이 아이들이 상처받은 이유는 같다. 바로 '돈' 때문이다. 아저씨가 안정적으로 돈만 잘 벌었어도 이 아이들이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생 아무렇게나 막 살고 싶어도 꾹 참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돈을 벌고 저축하는 삶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지키는 일이다. 같은 상처를 알아봤는지 수현이와 유원이는 스르륵 서로에게 스며들고, 수현이의 남동생 정현이는 유원이와 썸까지 탄다(!). 비 오는 날 유원이를 데리러 와서 우산을 씌워주고, 유원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정현이다. 그런데 정현이와 결혼하면 아저씨와도 가족이 되는 건데 괜찮은걸까. 소설 속에서 아저씨는 결국 유원이 곁을 떠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렇게 맨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갚지 않고 빌리기만 하며 괴롭히는 사람은 왠지 절대 반성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것 같다. 그래도 작품 속에서는 아저씨가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유원이는 아저씨의 상처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남에게 미움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짠해 한다.
성북구 한 책 후보도서
책 <유원>은 성북구 한 책 후보도서다. 다른 후보도서에는 '어린이라는 세계', '시선으로부터,', '천 개의 파랑'이 있다. 그리고 책 <유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무거운 내용을 가벼운 문장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적당히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척하면서 겉도는 유원이의 모습은, 부모님의 사랑과 친구들의 관심만으로는 쉽게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같은 상처를 가진 수현이를 만나서야 유원이의 아픔이 치유된다. 정확히 말하면 수현이와 친구가 되지만, 수현이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된 후에야 진짜 마음을 열고 절친이 된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다. 꼭 유원이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 정도로 거대한 상처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상처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우리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가 치유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끼리끼리' 놀게 된다. 그래야 아픔을 이겨내고 앞으로 한걸음 또 나아갈 힘이 생기니까.
'책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예 <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리뷰 (0) | 2021.08.13 |
---|---|
김보영 < 미래로 가는 사람들> 리뷰 (0) | 2021.07.27 |
정세랑 < 시선으로부터,> 리뷰 (0) | 2021.07.24 |
이정명 < 부서진 여름> 리뷰 (0) | 2021.07.04 |
신이현 < 숨어있기 좋은 방> 리뷰 (0) | 2021.06.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