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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혼다 다카요시 < 내일까지 5분 전> 리뷰

by 티라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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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다카요시 <내일까지 5분 전> 리뷰

내일까지 5분 전

책 <내일까지 5분 전> 리뷰

책 <내일까지 5분 전>은 오랜만에 일본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그리워져서 읽은 책이다. 국가별로 소설 속에 그 나라만의 독특한 감성이 배어 있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읽을 때마다 참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일본소설은 굉장히 감정 표현이 섬세하고, 시니컬하며 염세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같은 일본작가라도 하와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요시모토 바나나는 몽환적인 느낌이 짙은 소설을 쓴다. 자신의 인생을 어디에서 보냈는지가 이토록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걸 보면 국적은 의외로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줄수도 있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은 26세 회사원이자 꽤 인기 있는 타입인 일본 남자가 연애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할 일이 없다며 심심해하면서도 굉장히 부지런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주말인데 아침부터 일어나 1시간 이상 수영을 하고, 요리책을 사서 장을 본 뒤 직접 요리를 해 먹는다. 하루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안할 수도 있는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모습이다. 이번 시험 망쳤다면서 알고보니 엄청 공부 잘하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게으른 척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부지런한 주인공은, 회사일에 전혀 애정이 없는데도 미친듯이 능력 있어서 승진할 수도 있는 회사를 나와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스카웃되는 완전 사기캐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의 주인공는 사실 회사일에만 애정이 없는 게 아니라, 인생 자체에 아무 느낌이 없다. 바로 고등학교 때 사귀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든,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고통을 맞닥뜨리고 실컷 아파해야 한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하며 살면 7년이나 지나도 그 고통은 가슴 속에 그대로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다행히 유족인 아버지가 끈질기게 주인공의 연락처를 찾아내 편지를 보낸다. 주인공은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 편지를 구석에 처박하두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고 연인의 묘비를 찾아가 대성통곡을 한다. 그제야 주인공은 몇 년이나 가슴 속에서 곪아가던 상처들이 시원하게 씻겨나가는 것을 느낀다. 

 

책 <내일까지 5분 전>는 굉장히 기묘하고 어떻게보면 기분나쁠수도 있는 이야기다. 바로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남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은 일본소설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으로, 인간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묘사한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에 나와도 무방할 정도다. 쌍둥이 자매는 바로 '가스미'와 '유카리'다. 가스미는 주인공과, 유카리는 '오자키'라는 남자와 각각 연인이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거의 뇌가 통일되다시피 했던 가스미와 유카리는 서로의 연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가스미는 유카리의 연인 오자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비극을 겪는다. 애초부터 취향이 똑같았다고 하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거기다 오자키는 주인공에게 이런 말까지 한다. 주인공이 왜 가스미가 아닌 유카리를 사랑하게 되었냐고 묻자, 오자키는 유카리를 먼저 만났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셈이다. 물론 연인들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믿는 편이 더 낭만적이겠지만 말이다. 안타까운 일은, 가스미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오자키는 유카리가 정말 유카리인지 아니면 가스미가 유카리인척 하는 것인지 의심하다가 점점 폐인이 된다. 그러나 독자들은 안다. 가스미가 유카리인척 하는 것이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의 작가는 독자들에게 모든 단서를 다 보여주면서 가스미가 유카리인 척 하는 거라고 대놓고 말한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은 기묘하지만 확실히 연애소설이다.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력 추천한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만, 결국 확신을 얻는다. 주인공은 정말 내가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걸까? 그리고 내 여자친구도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누구를 만나도 이 부분을 궁금해한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게 되면 누구나 묻고 답하는 전형적인 질문들이다.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도 연애도 결국은 인간관계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로 구성된다. 현재의 내 외모나 직업은 진정한 정체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사람, 음식, 책들이 바로 나다. 책 <내일까지 5분 전>의 주인공은 아직 이걸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이지만 결국 잘 극복해나간다. 5분 늦게 흐르는 시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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