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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김초엽 < 방금 떠나온 세계> 리뷰

by 티라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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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리뷰

방금 떠나온 세계_김초엽

책 <방금 떠나온 세계> 리뷰

1. 최후의 라이오니
2. 마리의 춤

3. 로라

4. 숨그림자

5. 오래된 협약

6. 인지 공간

7. 캐빈 방정식

 

1. 최후의 라이오니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첫번째 단편 '최후의 라이오니'는 죽어가는 로봇 '셀'과, 결함 있는 복제 인간 '라이오니'와의 로맨스다. 김초엽 작가가 그려내는 판타지 속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기계들은 겉으로는 아무 감정이 없는 척, 차가운척 도도한척 시크하지만 속으로는 자의식이 있고 추억과 그리움이 있고 사랑과 분노의 감정이 있다. 게다가 '최후의 라이오니' 편에서는 심지어 로봇이 죽음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첫번째 단편부터 불멸인, 복제인간, 기계마을, 광학탐사선 등 많은 요소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미 우주 곳곳에는 각종 형태의 세계들이 퍼져있고, 그 세계들이 멸망할 때 등장하는 일종의 유품정리사가 '로몬 종족'이다. 주인공은 종족은 '로몬'이지만 동료들과 달리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로봇 '셀'이 관장하는 세계에서 단독 의뢰를 받고 비로소 그동안의 모든 의문점이 해소된다. 알고보니 주인공은 '라이오니'라는 소녀의 복제인간이었고, 그래서 수백년간 라이오니를 기다려온 셀은 주인공을 라이오니로 오해한다. 주인공은 라이오니가 아니지만 죽음을 앞둔 셀을 위해 라이오니인 척하며 마지막 대화를 나눔으로써 셀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다. 김초엽 작가는 이런 로봇과 복제인간과의 교감을 의미심장하게 그려내면서 독자에게 알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이 둘을 보며 과연 기계들에게 정말 자의식이 없을까 의심하게 된다. 또한 불멸인들이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복제한 복제인간들에게도 자의식이 생기는 모습을 보며 복제인간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에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2. 마리의 춤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두번째 단편 '마리의 춤'은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게 한다. 마리는 시지각적 인지장애를 가진 소녀다. 이런 아이들은 이 세계에서 '모그'라고 불린다. 마리는 모그다. 그러나 마리는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플루이드'라는 장치를 통해 시각 없이도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플루이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시각에 의존하는 이들을 장애인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모그로 바꾸려고 일을 벌인다. 주인공은 무용 강사로서 마리에게 춤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마리다. 장애인은 일상생활에 불편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장애가 완전히 해소된다면 더는 장애인이 아니게 된다. 마리도 플루이드 장치를 통해 자신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하다못해 오히려 모그가 아닌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능력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 '마리의 춤'은, 과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3. 로라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세번째 단편 '로라'는, 팔다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떨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가끔 팔다리가 심하게 저릴 때 비슷한 감각을 느껴본 적은 있지만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아예 몸 전체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치 몸은 없이 영혼만 있는 느낌인데 사실 몸이 제대로 있는, 아주 기묘한 감각이다. 그러나 로라는 반대로 없는 몸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환지통을 겪는다. 로라는 평범한 신체를 가졌지만 로라가 인지하기에는 그에게 세번째 팔이 있다. 실제로는 없는데 팔이 하나 더 있다고 느끼다보니, 로라는 끊임없이 불쾌감을 경험하다 결국 기계팔을 이식한다. 단편 '로라'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로라는 기계팔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염증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라'는 '기묘한 이야기'의 일종인 것 같은, 정말 기묘한 설정의 소설이다. 

4. 숨그림자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네번째 단편 '숨그림자'는 '조안'과 '단희'라는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다. 조안은 오래전 지구가 망하기 전 냉동인간이 되었고, 한참 뒤 '숨그림자'라는 마을 연구실에서 깨어난다. 단희는 숨그림자 마을에 사는 소녀이자 언어연구원이다. 조안은 자신이 깨어난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숨그림자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실험체로 대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단희만 조안을 친구로 여긴다. 단희는 조안을 숨그림자 마을의 일원이 되도록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지역주민들의 텃세를 한 사람만의 힘으로 타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조안은 숨그림자 마을을 떠나 우주로 간다. 그동안 숨그림자 마을은 점차 쇠퇴한다. 수십년 뒤 조안은 다시 숨그림자 마을로 돌아온다. 오직 단희를 위해서다. 그렇게 인종차별(?)을 심하게 당했던 조안이지만, 숨그림자 마을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다른 세계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협약을 체결한다. 숨그림자 편에서 김초엽 작가는 단희와 조안 두 소녀를 통해, 종족과 시간을 초월한 순수하고 진실된 우정을 보여준다. 

5. 오래된 협약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다섯번째 단편 '오래된 협약'은 벨라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벨라타 마을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하며,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신앙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외부인들이 찾아와 이 신앙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개선하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사실 벨라타 사람들의 신앙은 일종의 '오래된 협약'이기 때문이다. 벨라타 마을에는 돌 같기도 나무 같기도 한 존재 '오브'가 존재한다. 내가 느끼기에 오브는 '지구' 그 자체 같았다. 벨라타에서 오브끼리 잘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여기 끼어든 연약한 인간들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대신 인간들은 오브를 해칠 수 없다는 협약을 맺고, 이 비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신앙으로 만들고 사제들을 키운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해보는 인간들을 신앙의 힘으로 막기 위해서다. 어차피 오브의 힘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세서 거역해봤자 인간들만 멸망할 뿐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외부 방문객들은 왜 오브를 먹어서 병을 치유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사제들은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다. 벨라타 마을의 평화를 유지하는 신앙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 단편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마을에 숨겨진 기묘한 비밀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6. 인지 공간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여섯번째 단편 '인지 공간'은 요즘 핫한 '클라우드'를 떠올리게 한다. 이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격자'라는 공간에 모든 지식을 모아놓고, 자신의 개별적인 뇌 안에는 별다른 지식 없이 텅 빈 상태로 살아간다. 마치 인터넷의 특정 공간에 많은 자료를 공유해놓는 클라우드 시스템과 비슷해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격자 공간에 한계가 있어 불필요한 정보들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 알아차린 '이브'는 주인공에게 문제점을 말하지만 격자 공간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 주인공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이브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격자 구조물에 접근할 수 없는 아이다. 책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 각 세계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느냐에 따라 장애를 가진 사람의 기준이 달라진다. '인지 공간' 편에서는 격자 구조물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일종의 장애인처럼 여겨진다. 이브는 공동 격자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인 격자를 개발하지만, 수명이 짧아 완성하기 전에 숨이 멎는다. 미래에 모든 지식이 클라우드 안에 보관되고 사람들이 공부를 전혀 안하고 검색만 하게 된다면 발생할 문제점을 미리 보여주는 소설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집단 지성의 힘을 역으로 느끼게 한다. 각자 갖고 있는 뇌로 여러가지를 배우고 생각하고,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특정 정보를 알게 되면 다같이 힘을 모아 행동을 취한다는 게 얼마나 안전하게 정보를 보관하고 사용하는 방법인지 깨닫게 된다. 

7. 캐빈 방정식

책 <방금 떠나온 세계>의 마지막 단편 '캐빈 방정식'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유현화는, 사고를 당해 혼자서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일종의 장애를 갖게 된다. 장애가 생긴 후에도 연구를 계속해서 울산의 어느 대관람차 특정 지점에서 주머니 우주가 열린다는 걸 계산해낸다. 근데 결말이 주머니 우주에 도착해서 울렁거리는 느낌을 느꼈다는 것밖에 없어서 좀 허무했다. 토끼모자를 쓴 소년이라도 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캐빈 방정식'은 귀신과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살고 있기에 마주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단편이다. 그래서 사람이 어쩌다 귀신과 같은 주파수에 맞춰지면 귀신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게 주파수가 아니라 정확히는 시간 거품으로 인한 주머니 우주라는 게 '캐빈 방정식'의 설정이다. 난 가끔 주파수가 이상하게 맞춰지는 기분이 들면 무서워서 음악을 틀었는데 소용없었다. (누가 그러는데 귀신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다 우리집을 이루는 바닥과 기둥, 바깥 세상과 사람들 같이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 생각하면 확실하게 이상한 주파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기묘한 감각이 사라졌다. 어른이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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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방금 떠나온 세계>는 김초엽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같은 구조의 판타지 소설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라는 노래처럼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냥 터무니없이 펼쳐지는 게 아니라 굉장히 사실적이고 과학적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인간의 상상력과 가능성은 정말 무한하다는 걸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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