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마르탱 뤼강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 리뷰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 리뷰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은 서른 살의 기혼 여성이 새 삶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내가볼 땐 사랑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한 것 같다. 그래서 결혼 후 남편과 유복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자기 인생이 우울하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느끼고 괴로워한다.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마지막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주인공 '이리스'의 취미는 재봉틀로 손수 옷을 지어입는 것이었다. 만약 이리스가 한국 여성이었다면 아기를 낳고 아기옷을 직접 만들어서 SNS로 홍보하며 유아쇼핑몰을 운영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외국 여성이었던 이리스는 패션의 중심지 파리로 6개월짜리 디자인 클래스를 들으러 떠난다. 이리스는 부모님과 남편에 순종하는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아내의 삶을 살아왔기에 평소의 이리스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리스는 믿어왔던 자신의 부모형제들이, 알고보니 자신의 의상학교 대학 합격 통지서를 몰래 버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져 보통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한다. 꽉 막힌 남편을 반강제로 설득해서 홀로 6개월간 파리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역시 부부는 너무 오래 떨어져 살면 안된다. 최근 빠져있는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도, 일 때문에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던 기상청 직원이 결국 이혼 요구를 받고 만다.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의 제목은 재봉틀 바늘이 손가락 사이를 통과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 같다. 주인공 이리스는 끊임없이 혁신적인 디자인의 의상을 제작하며 점점 프랑스 사교계에 진출하고 돈 많은 고객들을 확보한다. 그러나 일만 했어야 했는데 사랑까지 동시에 해버린 이리스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남편에 대한 의리 때문에 마음껏 사랑에 빠지지 못하던 이리스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자마자 이혼하기도 전에 마음 놓고 불륜을 저지른다. 사실 법적으로 이혼을 끝내고 나서 새 사랑을 시작하는 게 맞다. 이리스는 한때 잘나가는 모델이었던 중년 여성 '마르트'의 인맥에 힘입어 그동안 억눌러왔던 재능을 한껏 발휘한다. 동시에 이리스는 마르트의 아들 겸 남편 노릇을 하는 카사노바 '가브리엘'과 사랑에 빠진다. 이리스와 가브리엘을 자신이 키운 아들딸처럼 자랑스러워하던 마르트는 둘이 서로 사랑에 빠져 자신을 배신하자 분노에 휩싸여 광분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평소 그토록 고상하고 절제력 있던 마르트의 모습이 왜 한순간에 무너져 나락으로 치달았는지에 대해,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의 작가는 마르트에게 평소 신경증과 우울증이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살짝 아쉬운 설정이다. 그리고 마르트가 급하게 자살한 것도 스토리를 어떻게 마무리해야될지 몰라서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마무리가 뭔가 좀 탄탄하지 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에서 기승전까지는 너무 재밌었는데 결에서 뭔가 허무한 느낌이었다. 마르트의 유언장에는 모든 것을 가브리엘과 이리스에게 넘긴다고 적혀있었고,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의 마지막 장면은 이리스와 가브리엘이 마르트가 남긴 집과 의상실을 차지하며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책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은 주인공의 불 같은 로맨스와 성장 스토리가 동시에 펼쳐져서, 독자들에게 상당한 몰입감과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심하게 재밌었던 나머지 마무리가 부실하게 느껴져서 아쉽다. 마르트가 죽지 않고 반성하며 은퇴하는 결말이었다면 차라리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다. 갑자기 자살하는 결말은 좀 뜬금없었다. 아니면 마르트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고, 이리스와 가브리엘이 평생 마르트를 돌보며 의상실도 잘 이끌어나가는 결말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죽는 건 좀 너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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