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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최은영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리뷰

by 티라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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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다. 작가의 다른 책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도 분명 읽은 기억이 있는데 블로그에 왜 리뷰를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전형적인 80년대 감성을 담은 한국 소설이다. 그 시절을 살던 어른들의 서글픔이 담겨있다. 어딘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인생을 견뎌낸다. 그 시절엔 누구나 다 그랬으니까. 부당한 일에도 참고 사는 게 당연했으니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작가는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숨겨진 아픔을 연령대별로 보여준다. 장성한 자식과 손주를 보는 할머니부터 회사원을 거쳐 대학생, 고등학생까지 돌아가며 주인공을 맡는다. 나는 그중에서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회사원 이야기가 가장 공감이 많이 됐다. 정규직으로서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비슷한 업무를 하며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두번째로 공감이 간건 할머니 시점의 이야기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먼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의 미래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갔다. 손주의 순수함, 자식의 냉정함, 할머니의 쓸쓸함이 겹쳐지는 이야기다. 바쁘게 사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는 챙겨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친정에 의지하는 딸들도 많지만, 친정이 짐처럼 느껴지고 시댁에 더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 '우경'은 후자다. 할머니 '기남'은 자신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시어머니는 든든하게 생각하는 딸 우경에게 서운하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우경은 겉으로는 살뜰하게 부모를 챙기지만 마음 속은 얼음처럼 차갑다. 기남이 느끼기엔 그렇다. '효도'를 마치 회사 업무처리하듯이 해치울 뿐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은 부모는 없다. 기남도 그렇다. 자리잡고 잘 살아가는 우경이네 가족에게 짐이 되는 듯한 분위기에, 기남은 부모로서 위상을 드높이기는커녕 자꾸 위축된다. 분명 우경은 기남에게 효도를 하고 있는데 기남은 우경을 불편해한다. 기남은 부모로서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는데도 결과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자식들이 너무 잘나서 그런걸까? 자식들이 잘되면 당연히 부모는 기쁘겠지만, 부모보다 훨씬 잘나서 자식들이 은근히 부모를 무시하게 되면 어떨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최은영 작가는 그런 미묘한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동안 때때로 심기가 불편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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