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에세이

채원 < 이왕 살아난 거 잘 살아보기로 했다> 리뷰

by 티라 2021. 4. 24.
반응형

채원 <이왕 살아난 거 잘 살아보기로 했다> 리뷰

이왕_살아난_거_잘_살아보기로_했다

<이왕 살아난 거 잘 살아보기로 했다> 리뷰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한 교통사고는 더 억울하고 끔찍한 일이다. 작가는 초록불에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고난의 길을 걷는다. 전반적으로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같은 느낌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술술 읽혔다. 표지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일러스트는 해당 출판사의 특징인 것 같다. 그런데 작가가 너무나도 긍정적이라, 물론 마음은 가시밭길이겠지만, 그래도 초긍정파워 덕분에 책을 읽을 때면 사고당한 부상자가 아니라 싱그러운 소녀감성이 느껴진다. 병원 안에서 겪은 온갖 사건들과, 가족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자식에게 상처주는 엄마들이 많을까? 보통 엄마들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과 사이가 좋고 그런 걸 상상했는데, 꽤 많은 자식들이 엄마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작가도 엄마와 깊은 갈등의 골이 있다. 물론 엄마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만, 자식 입장만 봤을 땐 나쁜 엄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처주는 말을 얼굴 볼 때마다 하면 가족이 아닌 그 누구라도 사이가 안좋아지는 게 보통이다. 굳이 이해해보자면 엄마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받은 상처를 괜히 딸에게 풀었을 수 있다. 반대로 엄마에게 상처받고 자란 자식이 커서 엄마가 되면 절대 똑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랑만 가득 주는 경우도 있다. 작가도 비록 엄마가 밉지만, 가족들을 돌보느라 지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세상엔 왜 이렇게 술 마시는 아빠들이 많을까? 밤늦게 들어와서 술 냄새 풍기며 주정부리는 모습은 아빠든 엄마든 언니든 다 싫은 법이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커갈수록 조금이나마 아빠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아무리 맞벌이 가정이 대세라지만, 임신을 하면 사기업에 다니는 여자들은 회사를 그만둔다. 추후 재취업을 하더라도 아빠와는 그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 당장 가족들을 먹여살릴 돈, 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버는 돈은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는 정도지만, 아빠가 버는 돈은 집안을 버티게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술주정 심한 아빠들의 공통점은 가정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 도라에몽에서 술주정부리는 진구 아빠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란 말야~!' 를 외치며 술주정을 부리는 아버지를 아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술에 취해 잠든 아빠의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 '우리아들 누가 힘들게 했냐'며 따뜻하게 물어보신다. 미혼 직장인들은 절대 이해못할 가장의 무게를 토로하며 꿈 속에서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에게 안긴다. 

 

작가는 병원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안 그래도 수술받고 재활하느라 힘든데, 코로나가 오면서 답답한 병실에서 마스크까지 써야 하고, 산책과 병문안도 제한되고, 간병도 제대로 못받는다. 나도 1시간짜리 수술을 받느라 3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온몸을 크게 다친 작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병원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입원생활은 힘들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서 자괴감이 들고, 평소 씻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도 며칠간 못씻으니 너무 답답하고, 병실에 하루종일 누워 병원밥만 먹다보면 카페 가서 여유롭게 앉아 조각케이크 한 조각 먹는 것이 소원이 된다. 이렇게 기본적인 욕구도 해소가 되지 않아 스트레스인데, 의사나 간병인, 다른 환자들과 마찰이 생길 때면 너무 힘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흑백논리로 무조건 작가는 억울한 희생양이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둘다 어느정도 잘못이 있었을 것이고 작가도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며 상대방을 크게 탓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점은, 다른 사건들은 다 그렇다 쳐도 담당 의사에게 소리지른 것은 사회생활 경험치 부족으로 인한 실수라는 것이다. 의사가 잘못했더라도 내 담당 의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만 손해다. 간병인도 마찬가지다. 나를 돌봐주는 분에게 소리지르면 나만 손해다. 물론 갈등이 생긴 간병인은 다른 환자의 간병인이었으니 그분께는 소리질러도 별 손해는 없었을 것이다. 하긴 사회초년생이 이런 갈등상황에서 감정 통제가 자유자재로 되는 게 대단한 일일 것이다. 작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미혼 취준생이고, 계약직으로 1년 일한 경험밖에 없어서 통쾌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다 지나간 일이고 남 일이긴 하지만, 내 일처럼 너무 공감이 돼서 그 점이 아쉽다. 그래도 병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많은 일을 겪었으니, 앞으로 다른 곳에서는 그때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재활치료를 돕는 치료사 4명을 4명의 남자친구라고 비유한 게 재밌었다. 환자라서 못볼 꼴도 보이지만 그래도 서로 돕는 처지니 살가운 대화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힘든 병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웃을 일을 찾으려고 노력한 게 느껴진다. 근데 마지막에 헤어질 때 소소한 선물과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치료사에게는 약간 서운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 작가는 선물을 잘 챙기는 섬세한 사람인가보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환자의 고마움 표시로 생각해서 감사하게 받은 치료사도 있고, 여자의 호감 표시인가 싶어서 거부감이 든 치료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받은 상처가 많아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새로운 꿈을 가지며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공부와 운동만큼 우울증 극복에 도움 되는 일도 없다. 공부는 마음 근육을, 운동은 신체근육을 단련시켜준다. 작가는 버스에 치여서 지금도 버스만 보면 무섭다고 한다. 나도 대형 오토바이 두대에 치인 적이 있어서 오토바이 소리만 들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고 얼어붙는다. 그래도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트라우마를 겪고 또 극복해나간다. 작가는 이런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보다 힘든 처지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살아갈 힘을 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라도 각자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을 하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으면 한다.

 

[북리뷰] 아빠 잠깐 병원 다녀올게 : 힐링 에세이

밀리의서재 수필 <아빠 잠깐 병원 다녀올게> : 위암 투병기를 그린 힐링 에세이 책의 전반적 분위기와 목적 책 <아빠 잠깐 병원 다녀올게>는 제목을 참 잘 지은 책이다. 자칫 우울할수도 있는 위

tira.tistory.com

 

[책추천] 아무튼, 떡볶이 : 요조 에세이

[책추천] 아무튼, 떡볶이 : 요조 에세이 책 <아무튼, 떡볶이> 리뷰 요조의 에세이를 또 또 읽었다. 요조는 아무튼 시리즈에서 떡볶이를 맡았다. 나도 떡볶이를 엄청 좋아한다. 그런데 음악인이

tira.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