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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세이

김승 <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리뷰

by 티라 202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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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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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는 김승 작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무섭도록 솔직한 에세이다. 요즘은 자신의 찌질함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콘텐츠로 만들어 공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렇다. 작가는 부끄러울수도 있는 민낯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찬찬히 읽다보면 작가는 괴로워하면서도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게으르다고 한다. 겸손 떠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김승 작가는 게으르다기보다는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백수 상태에 더 가깝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만 주어지면 몸이 부서져라 일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직장에서 그는 상사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하며 새벽까지 죽도록 일했다. 자신의 쓸모를 아직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중인 것 같다. 솔직히 이런 특징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문과생들의 고민이다. 별다른 기술도 없이 사회에 방출되니 취업을 못하면 곧바로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백수로 지내다보면 자연히 사회와 멀어지고 가족 외에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이 사라진다. 작가도 자신의 근황을 '가족과 함께 산다'고 표현한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근황이 없다. 그래도 작가에게는 글쓰기 능력이라도 있다. 이렇게 책도 냈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글을 써서 돈을 번다. 얼마 안되는 수입이지만 그걸 모아 부모님 생신선물도 챙겨드리고 생활비도 보태는 효자다. 

 

작가는 제목을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라고 지었다. 물론 작가가 아니라 출판사가 지었을수도 있지만 말이다. 제목과 내용이 잘 부합하는 에세이다.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전혀 포장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나도 김승 씨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모든 취준생과 이직러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잔인할수도 있지만 어쩌면 비빌 언덕이 있어서 쉽게 퇴사를 했을수도 있다. 김승 작가도 퇴사할 때야 비로소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족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퇴사할 수 없다는 중압감이다. 로또에 당첨되고도 계속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든 퇴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만두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평소에 회사다닐 때 마음가짐을 마치 로또에 당첨된듯이 다니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면 애초에 퇴사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라는 제목은 어떻게 보면 유머러스하다. 자조적인 블랙 코미디다. 책 내용에도 웃음을 유발하는 부분이 많다. 작가는 자신을 건달 같은 100kg의 거구 사내로 묘사한다. 그런 마동석 같은 남자가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 카드로 택시비를 낼 수 있음에 엄마 몰래 기뻐한다. 명절에 친척들 잔소리가 싫어서 바쁜 척을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닮기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닮아가고,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는다. 작가는 가족 얘기밖에 할 게 없다고 부끄러운듯이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가족 얘기가 나올 때 공감이 가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형제자매와 방을 같이 쓰는 집이 많은 것 같다. 작가도 그렇다. 그런데 이말년의 유행어처럼, 오히려 좋다. 자아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방을 같이 쓰다보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형제자매와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수월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단단하게 자리잡는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는 윗사람과의 관계가 되고, 형제자매와의 관계는 친구들과의 관계로 확장된다. 그래서 가족이 화목하면 저절로 사회성이 길러진다. 김승 작가는 죄책감 갖지 말고 마음껏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길 바란다. 

 

책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는 브이로그를 보는 것 같은 편안한 에세이다. 100kg의 거구에 위협적으로 생겼다는 것만 아니면 나와 공통점도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작가가 애써 자기비하식으로 털어놓은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재포장하자면 이렇다. 작가는 끝이 없는 야근과 상사의 폭언에 지쳐 정신건강을 위해 퇴사 후 잠시 휴식 중이다. 휴식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영화 관련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게다가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집에서는 시험 준비하느라 우울한 동생도 위로해주고, 은퇴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며 설거지도 열심히 한다. 자신을 별볼일없는 인간으로 묘사했지만 소개팅이 들어왔다는 걸 보니 주변 사람에게 꽤 괜찮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런 작가의 일상을 소소하게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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