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리뷰
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소설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명)의 4부작 소설 중 2편이다. 4부작은 1편 <나의 눈부신 친구>, 2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3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편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순서로 읽으면 된다. 솔직히 책표지 디자인은 별로 맘에 안드는데 난 이북리더기로 읽어서 상관없었다. 그리고 책이 천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서 전자책으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책표지만 예쁘게 만들었어도 소장욕구 뿜뿜 할텐데 아쉽다. 책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주인공 엘레나와 라파엘라, 아니 레누와 릴라의 파란만장한 20대 연애사를 보여준다. 3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의 인물소개란에 2편 내용이 아주 자세히 요약되어 있다. 책은 굉장히 일관성있게 레누와 릴라의 인생을 집중적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책의 서술자는 레누다. 그러나 레누와 릴라는 서로를 눈부신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릴라는 부자와 결혼해서 호사스럽게 살지만 불행해한다.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는 첫날밤부터 지금까지 매일 폭력적으롸 릴라와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사람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행복할리가 없다. 애초부터 스테파노는 릴라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구애한 게 아니었다. 그냥 동네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갖고 싶었던거다. 릴라는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 스테파노의 식료품점과 구둣가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지만 모두에게 욕을 먹는다. 타고난 섹시함, 색기 때문에 온 동네 남자들이 릴라에게 딴마음을 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남자들의 아내와 애인들이 릴라를 질투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몸을 주지 않는 릴라를 욕하는 남자들과, 자기 남자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릴라를 욕하는 여자들로 가득차 있는 동네에서 릴라는 서서히 죽어간다고 느꼈다고 일기에 썼다. 릴라의 가족조차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절친 레누 외에는 그 누구도 릴라를 좋아하지 않고 뒤에서 욕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릴라에게 첫사랑이 찾아온다. 레누가 좋아했던 남자 '니노'와 사랑에 빠진다. 니노는 병약하지만 글을 잘 쓰고 말도 잘하는 잘생긴 소년이다. 릴라가 니노를 좋아한 게 진짜 좋아서인지, 절친 레누가 좋아하는 남자를 빼앗고 싶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레누는 빼앗겼다고 생각하지만 릴라를 원망하지 않고 계속 좋아한다. 나중에는 오히려 자신이 릴라에게서 더 큰 것을 빼앗은 건 아닌가 라고까지 생각할 정도로 레누는 참 생각이 깊은 아이다. 환상적인 섬 '이스키아'에서, 릴라와 레누는 돈 많고 잘생긴 소년 두명과 넷이서 신나게 매일 바닷가에서 만나 수영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더블데이트를 즐긴다. 이때 레누와 릴라는 17세였다. 릴라는 16세에 결혼해서 결혼 1년차 유부녀였다. 소년 두명은 니노와 니노 친구 '브누로'였다. 니노는 똑똑했고 브루노는 돈이 많았다. 릴라는 유부녀임에도 니노와 사랑에 빠져 불륜을 저지른다. 돈 때문에 가족에게 떠밀려 결혼한 스테파노가 아닌, 릴라의 선택으로 사랑하게 된 줄 알았던 니노도 결국 레누의 남자를 빼앗고 싶었을 뿐이었단 걸 알게 된다.
레누와 함께 있을 땐 불타오르던 둘의 사랑은, 레누가 떠나고 현실이 닥치자 한달도 안돼서 식어버린다. 릴라는 허름한 아파트를 구해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지만, 임신한 릴라에게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 대학생 니노는 23일만에 릴라를 버리고 떠난다. 릴라는 임신한 채로 스테파노에게 돌아가서 예전처럼 호사스럽게 살지만 이런 삶은 지속되지 못한다. 나도 처음엔 불륜을 저지른 릴라를 욕하면서 봤다. 그러나 릴라 인생을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비참한 인생이었다. 충분히 잘못된 선택의 댓가를 치렀다. 알고보니 스테파노는 릴라가 니노를 만나기 전부터 '아다'와 불륜을 저지르는 중이었고, 결국 릴라를 쫓아내고 아다와 합친다. 릴라는 '엔초'의 도움으로 고향 동네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이사가서 살게 된다. 기계에 몸을 쉽게 다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성희롱이 일상인 '햄 공장'에서 일한다.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다. 릴라의 교육을 반대하고 부자와 결혼하게 압박했던 릴라의 가족들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릴라는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폭력만 일삼는 남편과 어떻게 같이 살겠는가. 릴라는 멍청한 인생을 살기엔 너무 똑똑했다.
레누는 고향 나폴리를 떠나 피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16세에 부자와 결혼해서 떵떵거리고 살던 릴라와 달리 안경쟁이 공부벌레로 서점에서 알바하다가 성추행 당하고 그렇게 힘들게 번 알바비도 학비와 생활비로 다 갖다바치며 힘겹게 살던 레누는, 대학에 가서 드디어 꽃을 피운다. 하루종일 독하게 공부만 해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서 학비 걱정도 없다. 레누의 부모도 학비를 대줄 여력이 전혀 안된다.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은사님이 구해다주신 낡고 냄새나는 교과서로 공부했었다. 대학에 가면서 레누는 드디어 평생 붙어살던 릴라와 멀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니노를 빼앗았기 때문에, 레누는 릴라와 니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릴라와 떨어지자 일이 술술 풀린다. 대학생활도 멋지게 잘 해내고 교수들에게도 평판 좋은 학생이 된다. 그러나 첫사랑 니노를 절친 릴라에게 빼앗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고통을 자신과 분리하기 위해 레누는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러자 자신의 고통이 공책으로 옮겨간 기분이 들어 괜찮아지고, 그렇게 아픔을 극복한다.
사실 레누는 니노와 릴라가 사랑을 나누던 그날밤, 너무 고통스러워하다가 니노 아버지에게 그루밍 성폭행을 당한다. 레누는 자기 의지로 관계를 가졌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볼 땐 나이 많은 연장자가 순진한 애가 정신적으로 약해졌을 때를 노려 잘해주는 척,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척 하면서 성폭행을 한 걸로 보인다. 레누는 40년대생으로 거의 우리 할머니 뻘이다. 그래서 잘 몰랐을 것이다. 그 당시엔 '그루밍'은커녕 '성폭행'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 고통을 공책에 옮긴 레누는, 명망 있는 교수 집안 아들과 사귀다가 우연히 공책을 선물로 건네주게 된다. 그리고 그 아들은 공책을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어머니는 이를 곧바로 책으로 출판했을 뿐만 아니라 북토크까지 열어준다. 레누는 그 북토크에서 남친 어머니의 명망 있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위압감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다가 니노를 본다. 여기서 책이 끝난다. 니노는 릴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인생을 되찾았다. 니노는 다시 책 읽고 토론하길 좋아하는 대학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레누에게는 이미 잘나가는 집안의 아들이 있었다. 레누는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냥 사귄다고 말한다. 안돼 레누! 그냥 계속 사귀어 제발... ㅠㅠ 레누는 다시 만난 니노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니노는 매력적이지만 책임감 있는 인물은 아니고, 그의 아버지는 바람둥이에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는 사람이다. 제발 레누가 니노를 잊어버리고 아이로타 집안 사람들과만 계속 엮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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